푸미폰 ‘大王’…탁신 사임 이어 또 결정적 영향

  • 입력 2006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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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태국 헌법재판소의 ‘4·2총선’ 무효 판결 이면에는 푸미폰 아둔야뎃(79·사진) 국왕의 역할이 있었다. 푸미폰 국왕이 사법부를 향해 총선 이후의 정치적 혼란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찾으라고 단호하게 촉구한 뒤 이번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태국에서 국왕은 현실 정치에 거의 관여하지 않고 종교적 권위만 지닌다. 이 때문에 국왕이 한번 정치적 발언을 하면 태국 국민들은 절대적 신임을 보낸다. 탁신 친나왓 총리가 총선 이틀 뒤인 4월 4일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한 것도 푸미폰 국왕을 알현한 직후였다.

당시 탁신 총리는 “국왕에 대한 존경으로 사임을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푸미폰 국왕의 즉위 60주년을 두 달 앞둔 시점으로, 국가적 경축 분위기를 정치적 혼란으로 망치지 않겠다는 결단으로 풀이됐다.

태국에서 국왕을 비난하면 불경죄로 간주돼 체포되거나 강제 추방당한다. 반탁신 시위가 한창이던 3월 발생한 일간지 꼼찻륵 사태는 가장 최근의 사례로 꼽힌다. 당시 꼼찻륵은 ‘반탁신 시위 지도자가 국왕의 하야를 원한다’고 잘못 보도했다.

이에 태국 국민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고 이 신문은 3일간 자진 휴간한 데 이어 1면에 ‘편집국장이 국왕의 용서를 빈다’는 사과문까지 게재해야 했다. 태국 국민은 1987년 푸미폰 국왕에게 ‘대왕(the Great)’이라는 호칭을 부여하기도 했다.

푸미폰 국왕은 작곡 실력까지 갖춘 재즈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32세 때 ‘빈 음악·예술 협회’의 명예회원 자격을 얻었다. 또 화가와 사진작가, 번역가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3년에는 세계 최초로 특허를 출원한 국왕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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