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EEZ측량 한일간 협상기류…미국, 적극 물밑 중재

  • 입력 2006년 4월 20일 18시 39분


코멘트
미국이 서울과 도쿄(東京) 채널을 가동해 일본의 무단 수로측량 기도 사태로 불거진 한일간 갈등의 중재에 나서면서 '동해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독도, 역사교과서,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에 이어 '동해 사태'가 발생해 한일간 긴장이 격화되자 미국은 그동안의 '불개입' 기조에서 '적극적 물밑 중재'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게 도쿄 외교소식통과 미 행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도쿄 외교소식통은 20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외무성 차관과 미 국무부 고위인사가 최근 만나 동아시아 역사 및 독도 문제에 관한 협의 채널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가 유명환(柳明桓) 외교통상부 제1차관과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郞) 대사를 상대로 중재노력을 펼치고 있다.

▽미국이 개입한다=미국의 중재노력은 14일 버시바우 대사,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그리고 유 차관의 조찬회동에서 시작됐다. 일본의 무단 수로측량 계획이 알려진 직후였다. 당시 유 차관은 일본의 수로 측량 계획을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전후 사실관계(fact)를 먼저 확인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민감하게 반응하면 더 돌이킬 수 없다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고 미 행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그동안 미국은 '동맹국인 일본과는 미래의 전략을 논의할 뿐, 과거의 도덕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을 두고 논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해 왔다. 지난해 말까지 5년간 백악관에서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 소장도 최근 본보 인터뷰에서 이런 원칙을 확인했다.

그러나 양국은 '동해 사태'가 한일간 전면전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자 동북아 안보협의 차원에서 '과거사 협의 채널'을 구축키로 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협의 채널 구축 사실 자체를 철저하게 비공개에 부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 소식통은 20일 "미국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고립되고, 이런 고립이 미일동맹 약화를 초래하고, 그 결과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갖는 영향력이 줄어드는 사태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미 행정부의 방향 선회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미 행정부의 공식 입장은 종전과 다름없다. 미 국무부는 이날도 "한일간 문제는 두 나라가 해결할 일로 미국은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일간 협상기류=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20일 오전 오시마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일본의 수로측량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반 장관은 전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주재한 안보회의에서 재확인한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한국 측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의 수로측량 계획은 주권에 대한 도발행위이며 강행할 경우 국내법과 국제법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반 장관은 또한 일본이 수로측량 계획을 철회하면 외교적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갈 뜻이 있음을 밝혔다.

외교적 협상이란 이번 사태가 촉발된 원인이기도 한 한일간 EEZ 경계선 협상을 재개하는 문제와 국제수로기구(IHO) 해저지명소위원회에 동해상 수역에 관한 한국식 명칭을 제안하는 시기를 조절하는 문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7일 유명환 외교부 차관이 오시마 대사를 불러 수로측량 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한 데 이어 나온 조치로 '외교적 교섭'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린 것이다.

외교부는 또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국가를 상대로 다양한 외교채널을 가동해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본 언론들은 20일 라종일(羅鍾一) 주일 대사와 야치 외무성 차관의 회담이 있을 것으로 보도했으나 일본 외무성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도쿄=천광암특파원 iam@donga.com

김정안 기자=cred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