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0억달러 매출 私設 보안업체들 “국가안보도 맡겨라”

  • 입력 2005년 11월 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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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흔히 국가(state)를 정의하는 주요 특성 중 하나로 ‘합법적 폭력(군과 경찰)의 독점’을 든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인 사설보안업체의 급성장세를 살펴보면 “다시 중세의 용병(mercenary)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영국의 국제문제연구기관인 체이덤하우스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사설보안업체들의 놀랄 만한 성장은 단순히 국가 주권 및 국가 권력의 쇠퇴 논란을 넘어서 국가 안보와 지구 안보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고 진단했다.

사설보안산업의 시장 규모는 대략 950억 달러에 이른다. 9·11테러 이후 세계적으로 보안에 대한 위험도가 높아감에 따라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일부 대규모 사설보안업체는 그 규모와 활동 영역이 가히 전 지구적이다. 각각 수십 개 내지 100여 개 국가에서 활동하면서 수십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그동안 가장 큰 시장은 북미와 서유럽이었지만 최근 동유럽과 남미, 아시아 쪽이 새로운 시장으로 뜨고 있다. 특히 국가가 국방과 치안 기능을 거의 상실한 아프리카의 ‘약한 국가(weak state)’들에서 사설보안업체의 활동은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세계 8번째 산유국 나이지리아에는 1200여 개의 보안업체가 10여만 명의 고용원을 두고 활동 중이며, 이들 업체 없이는 나이지리아의 석유산업은 물론 국가의 존립 자체가 어려울 정도다. 케냐의 경우 사설보안업체가 2000여 개에 이르며, 우간다의 사설보안업체 직원 수는 전체 경찰 수와 같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전국의 경찰서 경비 업무를 사설업체에 맡기고 있다.

이 같은 사설보안업체 성황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점점 커가는 불평등성. 체이덤하우스 보고서는 “부유한 계층은 첨단 장비와 인력의 도움으로 안전을 누릴 수 있지만 가난한 계층은 돈이 궁하고 타락한 경찰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강한 국가(strong state)’라고 예외는 아니다. 미군은 이미 전투기능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아웃소싱할 수 있다는 기조 아래 사설보안업체들과 계약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새로 창설된 이라크군의 훈련은 물론 일부 전투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군 출신 보안업체 고용원의 경우 하루 일당이 1000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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