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센인소송 차별 판결]“日, 소록도의 恨 짓밟았다”

  • 입력 2005년 10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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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일본 도쿄지방법원 앞에서 한 변호사가 ‘부당판결’이라고 쓴 종이를 들고 한국인 한센병 피해자들의 보상 청구를 기각한 재판부에 항의하고 있다(왼쪽). 반면 불과 30분 뒤 대만의 한센병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지자 변호인이 ‘승소’라고 쓴 종이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오른쪽). 도쿄=AP AFP 연합뉴스
25일 일본 도쿄지방법원 앞에서 한 변호사가 ‘부당판결’이라고 쓴 종이를 들고 한국인 한센병 피해자들의 보상 청구를 기각한 재판부에 항의하고 있다(왼쪽). 반면 불과 30분 뒤 대만의 한센병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지자 변호인이 ‘승소’라고 쓴 종이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오른쪽). 도쿄=AP AFP 연합뉴스
25일 일본 도쿄(東京)지법이 한국과 대만 한센병 피해자들의 보상금 청구소송에 대해 엇갈린 판결을 내리자 한국 측 관계자들은 ‘차별적 판결’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이날 한국의 소록도 한센병 피해자 117명의 보상금 청구소송을 기각한 도쿄 지법 민사 3부는 “(한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원인이 당시 일본 정부의 격리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일본 국회에서 보상법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외국 요양소의 수용자도 보상 대상이라는 논의와 인식이 없었으므로 일본 정부는 보상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반면 같은 법원 민사 38부는 일제에 의해 대만 내 격리시설에 강제 수용됐던 대만의 한센인 25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보상법의 취지는 부당한 격리정책으로 장기간 고통을 받은 피해자들을 폭넓게 구제하는 것인 만큼 법을 소극적으로 해석해 보상을 거부한 일본 정부의 조치는 위법”이라며 원고 측 청구를 받아들였다.

▽“항소해야겠지만 남은 시간이 없다”=한국 원고 측 변호인인 박영립(朴永立) 변호사는 “한국과 대만 피해자 모두 일본 정부의 부당한 조치로 피해를 보았다는 점에서 똑같은데 서로 다른 판결이 나온 것은 소록도 재판부가 역사적 진실과 정의를 외면한 결과”라며 “항소해 반드시 승소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도쿄지법이 한국 한센인의 청구를 기각한 후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보인 한센인 장기진(蔣基鎭·85) 씨는 “항소를 해야겠지만 소록도 피해자들은 이미 80, 90세의 노인이라 시간이 없다”면서 “재판부에 왜 이런 판결을 했는지 묻고 싶다”며 울먹였다.

▽침통한 소록도=이날 오전 소식이 전해진 전남 고흥군 소록도도 침통한 분위기에 빠졌다.

국립소록도병원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재판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한센인 150여 명은 “대만은 손을 들어 주고 우리는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일본 사법부의 정의를 믿었는데 가당치도 않은 논리로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노했다.

소록도 주민자치회 김정행(62) 총무는 “죽기 전에 승소판결을 기대했던 분들의 한을 일본 재판부가 무참히 짓밟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들은 휴게실에서 ‘한센인 소록도 보상 청구소송 보고대회’를 가진 뒤 100여 m 떨어진 중앙공원까지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한 채 가두행진을 벌였다.

대한변호사협회 한센인권담당특위도 27일 서울 종묘에서 규탄 집회를 갖고 일본대사관까지 항의 가두행진을 벌이기로 했다.

▽전망=원고 측은 항소를 통해 판결을 뒤집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만 측 소송 재판부가 ‘한센병 보상법은 시설 입소자를 폭넓게 구제하기 위한 특별한 입법’이었다고 해석한 만큼 항소심에서 비슷한 판결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기대다.

그러나 오히려 이번 대만 한센인 소송에서 나온 판결이 예외적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대만 한센인 소송을 담당한 재판장이 법무성 인권옹호국장을 지낸 경력이 있고 과거 한센병 관련 소송을 진행한 경험이 있어 결과적으로 대만 측 한센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왔을 뿐, 이 판결이 일본 법조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2001년 나온 후생노동성 고시 등 관련 규정을 고쳐야 한다”며 한국 정부의 역할을 주문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고흥=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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