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王 국가원수화 일단 유보

  • 입력 2005년 3월 23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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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헌법의 개정을 목표로 2000년 1월 활동을 시작한 중의원 헌법조사회가 23일 일왕의 국가원수화 유보와 자위대의 위상 강화를 주 내용으로 하는 최종 보고서를 마련했다.

집권 자민당이 별도의 개헌안을 만들고 있지만 여야 정당의 합의로 마련된 이번 보고서가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일본 헌법 개정의 밑그림이 될 전망이다.

중의원 헌법조사회의 보고서는 ‘국방의무 신설’, ‘일왕의 국가원수 격상’ 등 기존의 과격한 주장을 상당히 완화하고 있지만 자위대의 해외활동 확대 등 민감한 내용이 많아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왕의 국가원수화에 신중=당초 자민당 측 일부 의원들은 이번 보고서에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상징적 존재’로 격하된 일왕을 명실상부한 국가원수로 부활시키는 조항을 넣으려 했다.

개헌을 주도한 당내 우익세력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일장기와 기미가요를 각각 ‘국기’와 ‘국가’로 명문화하는 방안과 함께 이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밀어붙였다. 하지만 “과거 회귀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는 당 안팎의 반대에 부닥쳐 한 걸음 후퇴했다.

중의원 헌법조사회는 “앞으로도 현재와 같이 ‘상징 천황제’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으며, (일왕을) 원수로 명기하는 데에는 소극적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천황제’에 비판적이고, 제1야당인 민주당이 강력히 반발하자 자민당이 순조로운 개헌 추진을 위해 일단 물러선 것으로 풀이된다.

헌법 개정을 발의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일왕은 현재 상징적인 국가원수로서 외국 정상이 방문하면 공식 만찬을 주재하고 개각 등 정치적 행사가 있을 때 추인하는 형식상의 권한을 갖고 있을 뿐 현실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헌법조사회는 또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성의 왕위 계승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은 점을 감안해 필요한 경우 여성도 왕위에 오를 수 있다는 원칙을 정했다.

▽자위대 격상 주력=보고서는 자위대의 위상 강화를 위해 세세한 항목까지 언급하고 있다.

헌법조사회는 “자위권 차원에서 (타국에 대한) 무력행사를 용인해야 하며, 국제 협력 활동을 위해 자위대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밝혀 ‘육해공군 및 기타 전력의 보유’를 금지한 현행 헌법과 달리 자위대에 명실상부한 군대의 지위를 부여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

헌법조사회는 다음 달 중순 중의원 의장에게 제출하는 형식으로 이 보고서를 공식 발표한다. 올 11월 자민당이 창당 50주년을 맞아 자체 개헌안을 확정하면 일본 정계의 개헌 행보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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