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서중석]‘韓流’키울 네트워크 만들자

  • 입력 2004년 12월 9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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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에까지 확산된 한류 열풍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기 시작한 것은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동아시아의 한류는 중국 대만 베트남 등 유교 문화권에서만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던 예상을 뒤엎고 현재 동남아시아의 불교 문화권인 태국, 이슬람 문화권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까지 퍼져 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우리는 ‘바람’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가변성을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 바람은 그 장래를 예측할 수 없어 지금은 열풍처럼 몰아치지만 그 강도와 방향이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하루아침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또 한 문화가 다른 문화권에 영향을 미치게 될 때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현지의 움직임도 예측할 수 있다.

배용준 씨의 일본 방문 시 보여 준 여성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 뒤에 이어진 일본 언론의 비판적인 보도는 한류에 대한 역풍(逆風)의 예고라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아직 역풍이 표면화되지 않은 베트남이나 태국에서도 정부 관료나 학자들 중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제적 영향이 큰 동남아에는 한때 젊은이들 사이에 일본문화가 유행했지만 큰 바람이 되지도 못한 채 잦아들었다. 일본을 사랑하는 사람이 동남아에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문화적 교류와 공감대를 기초로 하지 않으면 한류의 현지 정착이 불가능함을 시사한다. 한류가 오늘 불고 내일 사라지는 바람으로 끝나지 않고 동아시아에서 지속적인 문화로 정착하려면 국내외 관계자들의 다각적이고 전략적인 노력이 시급히 요청된다.

우리의 장기 전략은 교육 및 사회문화 분야의 건강한 교류에서 시작돼야 한다. 필자는 2000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주도 아래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에 설립된 아시아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아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주요 6개 대학을 중심으로 한국학 정착을 위한 공동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현지 한류 바람의 ‘힘’을 체험했다. 한류가 한국을 배우려는 관심으로 연결돼 현지 대학 내에 한국학을 정착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 것이다.

이는 작은 ‘토대’에 불과하다. 앞으로 학계, 정부 및 기업을 잇는 지속적인 연구 교류 네트워크를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해서 음악, 영상물 등 한국 문화 상품에 대한 이들 지역의 ‘소비 바람’이 우리 문화와 사회에 대한 관심과 교류로 전환되도록 해야 한다. 또 이를 통해 한국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차세대 인재들을 배출하는 등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 문화가 동아시아 전역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친 적이 역사 이래 한번도 없었다. 현재 동남아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점점 줄고 중국의 힘은 아직 크지 않다. 앞으로 3년 정도의 시간이 있다고 본다. 그 안에 동남아의 한류 바람을 지역 내의 학계, 기업, 정부를 잇는 네트워크로 연결해 장기적인 관심과 교류의 기반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우리 문화에 대한 그들의 관심에 대해 고마움과 사랑을 표시하고 친구가 되자고 제안할 수 있는 이런 기회는 한번 놓치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서중석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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