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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8월 6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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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돌아오고 싶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아"▼
▽멀고도 가까운 한국=자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안 앤더슨(한국명 안미선·36·여·덴마크)은 “인천공항에 내려 서울로 오는 도중 거리와 집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며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는 사실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항상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는 것. 그는 “한국 여행은 내 자신 안으로의 여행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1970년대 그가 자란 덴마크에서는 한국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어릴 때 한국 대사가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태극기를 봤고, 그게 한국의 깃발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인터넷으로 입양인 정보를 얻고 커뮤니티를 구할 수 있는 지금은 한국이 훨씬 가까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벨기에로 입양됐다 영국으로 이민 가 살고 있는 오 파술(한국명 이수진·29·여·벨기에·에너지회사 근무)에게도 한국은 갑자기 다가왔다.
“벨기에에서 20년 동안 한 번도 한국인을 만나지 못했어요. 6년 전 영국으로 옮기고 나서야 한국 친구들을 만나면서 한국에 대해 알게 됐죠.”
그는 “당시 한국 사람들의 환영과 친절에 매우 놀랐다”고 회상했다. 2000년 한국인 룸메이트의 도움으로 한국 가족을 찾았다.
같은 해 한국의 가족을 만난 안토니 아자드(28·프랑스·방송기자)는 “처음에는 이방인처럼 느꼈다. 몸은 한국인이어도 나는 프랑스인의 눈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한국 가족과 있는 자신을 볼 때마다 삶의 또 다른 부분을 발견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한국에 대한 느낌은 늘 발전하는 것 같아요. ‘엄마’라는 단어를 배울 때, 전통을 익힐 때 매번 달라집니다.”
▼"한국유학생 부모 편견에 첫사랑과 이별도"▼
▽상처, 고통, 행복=아자드씨는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자체가 견디기 힘든 사실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어린이들은 잔인할 만큼 솔직하게 차이를 지적하고, 그것은 때로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너는 왜 우리와 다른가’ ‘너와 부모는 왜 다르냐’ 등 많은 질문을 받아야 했죠.”
하지만 그러한 질문들은 그가 자신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양부모는 “친부모는 아니지만 너를 사랑한다”며 그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려줬다.
“성숙해 가면서 남과 다른 과거의 경험이 자랑스러운 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의 문화에 머물지 않고 열린 마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특별한 힘을 줬죠.”
앤더슨씨는 “자라면서 가끔 한국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하지만 그것은 상상일 뿐 나는 한국인인 동시에 덴마크인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불편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도착한 순간 마음이 너무 편하고 행복했어요. 이제는 양쪽 모두에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아만다 유(한국명 김수진·26·여·미국)는 “15세 때 한인 교회를 찾아간 이후 스스로 한국인으로 성장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교포 아줌마’라고 규정한다.
결혼 전 입양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한국인 유학생 부모의 반대로 첫사랑과 억지로 헤어져야 했던 아픔도 겪었지만 한국에 대한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입양인이지만 한국인 부모를 둔 한국 사람들과 많은 공통점을 느낍니다. 그 정체성을 중요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한국의 삶에 호기심을 간직해 왔어요.”
그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한국말로 “가슴과 마음이 한국 사람인데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파술씨는 “친부모를 만나도 물어볼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어떤 질문은 답변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친구들과의 우정은 나에게 매우 소중하고 나를 행복하게 한다”며 “하지만 가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나를 한국인으로 또는 이방인으로 규정하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다. 일종의 애증 관계”라며 웃었다.
▼"가정폭력-핏줄 중시문화 이젠 바꿔야"▼
▽한국에 바라는 점=이들은 자신들의 성장 과정에 대해 나쁜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랄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도 “한국은 해외입양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앤더슨씨는 “입양의 결과가 좋고 나쁜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입양인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이라며 “내가 2개의 정체성을 가질 것을 선택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9년째 살고 있는 조니 콜린스(31·미국·이벤트플래너)는 “입양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가정폭력, 성교육, 룸살롱 중심의 접대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9개월 전 처음으로 한국 버스에서 콘돔 광고를 봤다”며 “성교육만 제대로 돼도 원하지 않는 아이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술 중심의 비즈니스 문화도 많은 미혼모를 양산하기 때문에 바뀌어야 한다는 것.
또 ‘핏줄’을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한국 아이만 입양하려 하고 그에게 과거를 숨김으로써 친부모와 만날 기회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는다는 것.
그는 “한국은 세계 경제 10위권의 놀라운 발전을 이뤘지만 의식 수준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입양인들에 대해 보다 효율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앤더슨씨는 “평생에 한 번이라도 한국을 찾을 수 있도록 일종의 ‘티켓’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놓았다.
“한국을 찾으려면 길러준 부모, 가족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되곤 합니다. 또 정체성이 형성되는 청소년기에는 돈도, 정보도 부족하고요. 만일 한국 정부나 단체에서 입양되는 아이는 평생 한번은 한국에 올 수 있는 권리를 준다면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요.”
이들은 새벽이 될 때까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아자드씨와 유씨는 “조금이라도 한국을 더 느끼고 싶다”며 밤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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