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글로벌 코리아]외국서 배운다<中>홍콩

  • 입력 2004년 7월 20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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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s World City.’ 홍콩의 관문인 첵랍콕 국제공항에는 ‘아시아의 세계 도시’를 뜻하는 로고가 선명히 적혀 있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공항 리무진은 규정속도 시속 80km를 준수하면서 손님들을 친절하고 쾌적하게 시내로 안내한다. 올해 홍콩의 국제컨설팅기관인 정치경제위험자문공사(PERC)의 조사 결과 홍콩은 싱가포르와 함께 국제화 수준이 높고 인종 편견이 없어 외국인이 생활하기에 아시아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꼽혔다. 홍콩이 국제도시로 꼽히는 것은 우선 관공서, 병원은 물론이고 택시운전사나 구멍가게 주인까지도 영어가 통한다는 점. 영어가 공용어로 쓰이는 환경과 오랫동안 서구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그 배경이 됐다. 그러나 홍콩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영어가 공용어로 쓰이는 것도 큰 요인이지만 이곳이 살기 좋은 것은 반드시 영어 때문만은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규제 없는 ‘원스톱’ 행정

국내 대기업 주재원으로 4월 말부터 홍콩에서 일하는 김모씨(41). 그는 두 달 남짓 경험한 홍콩이 ‘원칙과 룰이 통하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김씨가 홍콩의 취업비자를 받는 데 필요했던 것은 여권과 재직증명서뿐이었다. 발급에 약 한 달 정도 소요되는 ID카드는 임시카드로 대신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은 한국에서 가져온 재학증명서 한 장만으로 캐나다 계열 국제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국제면허증은 바로 홍콩면허증으로 갱신이 가능했다. 집까지 구하고 이 모든 일을 하는 데 소요된 기간은 불과 3일. 외국인이 홍콩에 정착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그뿐이다.

김씨는 “이방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차별이나 불편은 전혀 느껴본 적이 없었다”며 “홍콩은 불필요한 절차 없이 모든 것이 원칙대로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라고 말했다.

간편하고 빠른 것은 회사설립 절차도 마찬가지다.

홍콩에서 법인등록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대표이사와 주주의 이름과 주소, 여권뿐. 최소자본금은 단돈 2홍콩달러(약 300원)에 불과하다. 길어야 2주 정도 걸리는 법인등록 절차를 거치면 홍콩 국내법인과 한 치도 차이 없는 대우를 받는다.

홍콩 현지의 오재훈(吳在勳) 변호사는 “‘정말 그것만 준비하면 됩니까’, ‘다른 것은 없습니까’라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여기서는 정말 그렇게 회사가 설립된다”고 말했다.

○외국인, 혜택도 차별도 없다

홍콩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약 50만명. 전체 인구 690만명의 7%에 해당하는 수치로 한국이나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외국인이 많다.

이 때문에 홍콩은 ‘외국인 도시’라고도 불린다. 100여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에 외국인에 대한 현지인들의 배타적 감정도 약하다.

외국인에게 별다른 ‘특혜’가 없는 것은 조세 제도가 대표적이다. 부가가치세, 이자소득세 등 간접세가 없고 세율이 낮은 대신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세금 혜택이 전무한 것.

외국인만을 위한 전용진료소도 없고 외국인 주거 단지 조성을 위한 뚜렷한 대책도 찾아 볼 수 없다. 홍콩의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는 바로 내·외국인 사이에 전혀 차별이 없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홍콩 체류를 증명하는 ID카드만 받으면 내·외국인의 구분은 단번에 사라진다.

은행 대출이나 학교 입학은 철저히 신용과 실력에 좌우된다. 외국인의 병원, 관공서 이용 절차도 내국인과 다르지 않다. 교통 법규를 위반하면 영어로 그 내용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경찰이 거리에 깔려 있고 경찰서에 끌려가더라도 경찰서별로 미리 지정되어 있는 다양한 국적의 통역이 곧바로 동원된다.

홍콩 투자청(InvestHK)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물론이고 외국인들 스스로도 외국인을 위한 별도 지원센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병원 등 편의시설 밀집

홍콩섬 동부 타이쿠싱(太古城) 지역에 사는 일본인 모리모토씨(31·회사원).

2년반 전 홍콩에 온 그는 사는 곳을 벗어나지 않고도 모든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40층 이상의 고층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이 지역은 한국인을 포함해 일본인, 대만인 등 동양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곳.

지하철역에는 아파트 건물과 연결된 대형 백화점이 위치해 있다. 이 역에서 차로 반경 10분 이내의 거리에 일류 국제학교가 5, 6개 포진해 있고 외곽으로는 넓은 공원이 펼쳐져 있다.

모리모토씨는 “편의시설이 모두 지근거리에 있어 교통, 교육, 쇼핑 등 일상사에 불편함을 느끼는 점이 없다”고 말했다.

편의시설이 주거지에 밀집해 있는 것은 타이쿠싱 지역뿐이 아니다. 미국, 캐나다인 등이 많이 사는 홍콩섬 미드레벨 지역도 병원과 학교, 대형 쇼핑체인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간단한 체육시설이나 쇼핑센터는 아예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서 있다.

이런 주거단지의 조성 과정이 지극히 자생적이라는 것이 싱가포르와 다른 점이다. 입국과 생활, 비즈니스의 장벽이 높지 않다보니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유입됐고 이들을 위한 병원, 학교 등 편의시설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

KOTRA 홍콩지부 손병철 무역관은 “영어통용 환경이 뒤떨어지는 한국이 홍콩을 벤치마킹할 부분이 있다면 외국인 주거지에 편의시설을 집중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콩투자청 가핀 부국장 인터뷰▼

경제적 자유도 세계 1위, 교역량 세계 10위, 외국인 직접 투자 규모 아시아 2위.

이런 화려한 성적표가 만족스럽지 않은 듯 홍콩은 최근 외국인 투자를 더 늘리기 위해 관련 규정을 손질했다.

우선 법인 설립 규정을 완화해 주주와 이사는 각 1명만 등록하게 했다. 또 지난해부터 홍콩에 650만홍콩달러를 투자하고 7년 이상 거주할 외국인들의 투자이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홍콩 투자청 사이먼 가핀 부국장은 “홍콩 경제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충격에서 벗어나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다”며 “정치 불안도 경제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홍콩의 경제 동향과 당면 문제점을 어떻게 분석하나.

“지난해 사스의 충격에서 벗어나 회복이 아주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도 활성화됐고 중국 본토인들로 인한 관광수입이 많이 늘었다. 홍콩이 사업 실패 위험이 적은 곳이라는 것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비싼 물가는 약점이다. 또 본토에서 너무 많은 인구가 유입돼 다른 곳에서 유능한 인재들을 유치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홍콩이 외국인 투자자를 끄는 요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완전한 자유경제와 쉬운 법인 설립, 낮은 세금이다. 제반 규정에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전혀 없다. 정보 교류가 완벽하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우리의 원칙은 ‘최소한의 간섭과 최대한의 지원’이다.”

―중국 정부와의 갈등이 커지고 있는데….

“1997년 홍콩이 반환됐을 때도 많은 걱정들을 했지만 사실 문제가 없었다. 이제 홍콩의 외국인들은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황이 와도 경제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경제는 다른 문제다. 올해 대규모 시위도 매우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이래저래 홍콩이 안전하다는 뜻이다.”

―홍콩이 갖고 있는 국제도시로서의 장점은 무엇인가.

“지리적 위치가 대단한 혜택이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홍콩의 ‘관문’ 역할도 중요해졌다. 매우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도시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조건을 평등하게 하지 않고는 주변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홍콩은 매우 안전한 도시이며 생활 정보를 찾기도 매우 수월하다. 홍콩은 ‘외국인지원센터’가 아예 필요하지도 않다.”

▼물가-집값 가장 큰 고민▼

예나 지금이나 ‘국제도시’ 홍콩의 가장 큰 고민은 살인적인 물가와 부동산 가격.

1997년 아시아 지역에 금융위기가 닥친 이후 홍콩의 부동산 시세는 평균 60∼70%나 하락했지만 아직도 저렴한 집을 구하는 것은 외국인들에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지난해 홍콩 정부 자료에 의하면 1제곱피트당 연간 사무실 임대료는 약 43달러. 싱가포르(31달러)나 베이징(35.6달러), 인도(10.5달러) 등 아시아 다른 경쟁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타이쿠싱과 미드레벨 등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주거지의 평균 임대료도 한 달 2만∼3만홍콩달러(약 300만∼450만원)에 이른다.

현지인들의 육아와 가정부 일을 도맡아 하는 ‘아마’들도 홍콩의 골칫거리.

필리핀, 태국, 인도인 등 25만명에 육박하는 이 외국인 ‘가정도우미’들은 한 달 최저임금 45만∼50만원만 받고 고용주의 집에서 생활하며 모든 허드렛일을 처리한다.

정부의 허가를 받은 합법체류자로 일주일에 하루의 휴일과 의료비를 보장받고는 있지만 “홍콩인들이 이들에게 법으로 규정된 것 이외에는 인간적인 배려를 눈곱만큼도 안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홍콩 현지의 한 주재원은 “최근에는 중국에서 몰래 들어온 불법체류자가 급증해 이들에 대한 관리도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홍콩=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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