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경제 부활과 고민]<3>금융개혁 먼길…日경제 앞날은

  • 입력 2004년 5월 25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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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1990년대 중반 폐지했던 임원 상여금 제도를 9년 만에 되살리기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일본 은행업계 1위(자산 기준)인 미즈호은행도 최근 몇 년간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물러난 전직 임원 40여명에게 늦게나마 퇴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2조엔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사실상 국유화된 리소나은행은 임금 삭감에 따른 특별위로금을 1인당 평균 25만엔(약 250만원)씩 줄 계획이다.

2, 3년 전만 해도 막대한 부실채권으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일본의 은행들이 어깨를 활짝 펴고 있다. 흑자가 늘어나고 부실채권이 빠른 속도로 줄어든 덕분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기업실적 개선과 주가 상승이 금융부실 해소책이라는 사실이 일본 금융의 부활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전했다.

▽‘부실채권이여, 안녕’=“부실채권 문제가 해결됐는지 아닌지에 대해선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겠다. 실적을 보고 판단해 달라.”

기업의 실적 개선에 힘입어 일본 경제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부실채권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일본 최대은행인 미즈호은행의 경영진은 24일 2003 회계연도 결산 결과를 발표하면서 부실채권 규모를 줄이고 흑자를 냈다고 밝혔다.-사진제공 아사히신문

미즈호 파이낸셜그룹의 마에다 데루노부(前田晃伸) 사장은 2003 회계연도(2003년 4월∼2004년 3월) 실적을 설명하면서 우회적으로 ‘부실채권 시대의 종막’을 선언했다.

미쓰비시도쿄은행의 한 간부는 “미국과 유럽의 선진금융기관들은 부실채권 비율이 2%대라고 들었다”면서 “우리는 2006년까지 1%대로 낮추겠다”고 말했다. 결산발표장의 어느 누구도 이 말을 ‘허풍’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올 3월 말 현재 일본의 7대 은행이 안고 있는 부실채권은 14조엔으로 30조엔에 육박했던 2년 전보다 절반가량 줄었다. 부실채권비율도 2년 전의 8.4%에서 5.2%로 낮아졌다.

리소나은행과 경영악화로 고전 중인 UFJ은행을 뺀 5개 은행은 부실채권 처리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도 흑자를 냈다. 주가 상승으로 주식보유 평가익이 늘어난 데다 기업투자가 살아나면서 가계 금융에 편중됐던 수익 구조가 다양해졌기 때문.

결산 시점인 3월 말의 닛케이평균주가는 11,715엔으로 1년 전보다 3743엔 올랐다. ‘주가상승→주식평가익 증가→금융기관 수익개선→부실채권 감소’라는 선순환 구조가 일본경제 최대 고민인 금융부실을 해결해준 것이다.

일본 정부는 주요 은행의 부실채권비율을 내년 3월까지 4.2%로 낮추는 ‘금융재생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현 추세라면 올해 안에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경제재정금융상은 “취임 당시 일본 금융은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 개선―소득 감소의 모순=마쓰시타, 산요 등 전자업체가 밀집한 오사카(大阪)와 도요타자동차의 본거지인 나고야(名古屋) 일대에선 공장에서 일할 젊은 인력을 구하기가 힘들다. 시내 편의점에는 계약직 근로자를 찾는 구인 전단이 쌓여 있다.

기업들이 공장을 증설하거나 기존 생산라인을 풀가동하면서 일손 부족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닛산자동차가 카를로스 곤 사장 취임 이후 가장 많은 2000여명을 뽑은 것을 비롯해 대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채용 규모도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3월 실업률은 4.7%로 전월보다 0.3%포인트 하락했다. 실업률이 4%대로 낮아진 것은 2001년 이후 처음.

하지만 3월 중 1인당 현금 급여는 28만4858엔(약 280만원)으로 9개월 연속 감소했다. 기업들이 부족한 인력을 계약직으로 보충하면서 정규직의 임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 시작된 경기상승 흐름이 지방으로 확산되는 추세지만 지방 경기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최근 열린 일본은행의 지점장 회의는 “홋카이도(北海道)를 뺀 거의 모든 지방의 경기가 좋아지고 있지만 대기업을 유치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경제력 격차는 더 벌어지는 양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진짜 부활’ 관건은 구조개혁=일본 정부는 경기 회복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이 내건 구조개혁의 성과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개혁이 집권 자민당 및 관료조직의 반발로 지지부진했던 점을 들어 이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고이즈미 개혁의 핵심으로 꼽히는 도로공단과 우정사업의 민영화를 예정대로 각각 2005년과 2007년까지 완료한다는 방침이지만 진척 속도는 매우 느리다.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과 연금재정 악화 등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성장 잠재력을 급속히 상실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가 당분간 수출 및 민간설비투자를 중심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겠지만 구조개혁으로 체질을 강화하지 않는 한 완전한 부활엔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니시무라 와세다대 교수 신중론▼

“일본 경제가 긴 터널을 빠져 나오는 단계인 것은 분명하다.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터널이 없다고는 누구도 장담 못한다. 거대한 암벽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장성(현 재무성) 출신인 니시무라 요시마사(西村吉正·64·사진) 와세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25일 “경제가 호전된 것은 분명하지만 풀어야할 과제도 쌓여 있다”며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했다.

니시무라 교수는 경기상승을 이끈 일등공신으로 도요타, 캐논, 닛산 등 일본의 대표적 제조업체를 꼽았다. 장기불황으로 무기력증에 빠졌던 국민이 기업의 선전을 보고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사회 전체가 활력을 되찾았다는 것. 일본 정부가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무분별한 공공지출을 억제하면서 경제주체들의 ‘정부 의존적 성향’이 줄어든 것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불황을 거치면서도 일본 기업들은 기술력과 고품질이라는 강점을 잃지 않았다”면서 “이번 경기 회복은 민간 주도로 시작됐기 때문에 상승 국면이 2, 3년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본 경제가 현재의 위상을 지키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특히 평균수명 연장과 출산율 저하에 대비해 이민 허용 등 노동력 확보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2년 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구조 개혁을 공약했을 때는 경제의 기력이 바닥난 상태여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면서 “지금이야말로 개혁으로 체질을 강화해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경제의 부활 모델은 경기침체로 고생하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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