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링컨은…’ ‘펜’을 ‘팬’으로 만든 링컨의 지혜

  • 입력 2004년 5월 14일 1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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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병사들뿐만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지지를 필요로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언론은 물론 반대하는 대체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가적 위기를 극복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병사들뿐만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지지를 필요로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언론은 물론 반대하는 대체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가적 위기를 극복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링컨은 신문과 싸우지 않았다/해리 마이하퍼 지음 염정민 옮김/389쪽 1만2000원 이매진

남북전쟁 당시 미국의 대통령 링컨은 2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피와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처절한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에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정치적 의사를 관철하려는 언론과 고난도 두뇌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최소한의 뉴스와 최대한의 정치’를 제공하던 당시의 ‘정치적 신문’들은 남북전쟁 내내 연방정부를 괴롭힌 존재였다. 링컨은 전쟁에 반대하고 노예제도 폐지령을 격렬하게 비난하던 반대파 언론들뿐만 아니라 노예제도 폐지에는 찬성하지만 그 범위와 방법, 시기를 둘러싸고 링컨을 공격하는 전쟁 찬성 언론들의 공격에도 직면했다.

그러나 링컨은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남북전쟁에 대한 여론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어려운 균형 잡기’를 하면서도 ‘정직한 에이브’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정치가로서 링컨은 타고난 연설가였다. 그는 법률가임에도 불구하고 농민과 노동자도 이해할 수 있는 친숙하고 일상적인 어투로 대중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섰다. 그러나 정말로 대규모 청중을 모으기 위해서는 연설을 보도해 줄 ‘매스컴’을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치 초년병 시절부터 자신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기자들과 편집자들을 친구나 동료로 만들었다. 1860년 2월 뉴욕의 쿠퍼유니언에서 ‘노예제도’ 폐지 연설을 끝내자마자 그는 ‘뉴욕 트리뷴’지의 조판실을 찾아가 자신의 연설문이 제대로 실렸는지 교정쇄를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링컨은 자신의 신임을 얻은 기자들과 기꺼이 대화를 나누었다. 때때로 기자들은 대통령에게 자신들이 알고자 하는 내용을 써놓은 쪽지를 보냈다. 링컨은 만약 질문이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면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주제가 자신의 주된 관심사라면 그 기자를 집무실로 불러들이거나, 기자 대기실로 직접 가서 세부질문에 대답했다.

이런 링컨도 남북전쟁 동안에는 끊임없이 ‘언론과의 전쟁’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공화당을 지지하는 ‘뉴욕 트리뷴’과 민주당 쪽 ‘뉴욕 헤럴드’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가장 힘든 일이었다. 윌리엄 셔먼 장군은 비판기사를 써대는 ‘뉴욕 헤럴드’에 대해 “대통령이 ‘뉴욕 헤럴드’를 통치하지 않으면 ‘뉴욕 헤럴드’가 대통령을 통치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방제 수호’에 정치적 생명을 걸었던 링컨은 반대세력이 주장하는 것을 알기 위해 ‘뉴욕 헤럴드’를 즐겨 읽었다.

대통령 링컨은 미주리에서 존 스코필드 장군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하기도 했다.

“두 당파가 당신을 매도하든지 매도하지 않든지, 당신은 아마 올바른 사람일 겁니다. 한쪽에서 비난 받고 다른 한쪽에서는 찬사 받는 것을 조심하십시오.”

원제는 ‘War of Words’(2001년).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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