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택/美정치인들의 절제된 발언

  • 입력 2004년 3월 23일 19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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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클라크 전 미국 백악관 테러 대책 조정관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對)테러정책에 직격탄을 날리자 백악관을 비롯한 행정부와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부시 행정부가 알 카에다의 테러 가능성을 무시했고 이라크를 9·11테러의 배후로 연결시키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그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이라크전쟁의 정당성과 대테러정책이 11월 대선의 최대 이슈로 등장한 만큼 폭로 내용은 부시 대통령에게는 ‘악재’요, 민주당에는 ‘호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존 케리 상원의원의 반응은 간단했다. “그 문제에 관해 언급하기 전에 책을 읽고 싶다. 책을 부탁해 놓았다”는 것이 전부였다.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섰던 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히려 부시 대통령을 거들고 나섰다.

“나는 부시 대통령이 테러 공격 직후 며칠 동안 알 카에다보다 이라크에 더 초점을 맞췄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사실을 말할 때는 신중해야 하며 과장된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델라웨어주 출신 조지프 바이든 민주당 상원의원도 ABC TV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정책에 비판적이라면서도 “테러 확산에 대해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역시 부시 대통령을 옹호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나나 다른 사람의 충고를 따랐더라도 같은 일(테러)이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좀 다른 얘기지만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18일 같은 당 소속인 부시 대통령측이 케리 의원에 대해 “국가안보에 취약하다”고 공격하자 부당성을 지적하며 케리 의원을 옹호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을 지지한다면서도 “케리 의원은 훌륭한 사람이다. 그와는 생각이 많이 다르지만 국가안보에 도움이 안 된다는 식의 주장은 유권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정파적 이해를 떠나 사실과 국익을 중시하는 미국 정치인들의 신중하고 절제된 발언은 억지 주장과 당리에 절어 있는 한국 정치인들에게 교훈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권순택 워싱턴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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