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카키바라 교수 “日-EU 弱달러 공조 어려울듯”

  • 입력 2004년 2월 4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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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방선진7개국(G7) 회의에서는 달러화 가치의 적정 수준을 둘러싼 참가국간 시각차가 커 진통을 겪을 것이다. 달러화가 폭락하지는 않겠지만 하락세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금융시장 상황에 정통한 사카키바라 에이스케(신原英資·63·사진)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최소한 올해 하반기까지는 달러화 약세가 대세”라면서 “한국의 기업과 금융기관들도 이에 대비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사카키바라 교수는 1990년대 중반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 재무관으로 일하면서 능수능란한 환율 관리로 ‘엔고(円高)’ 흐름을 바꿔 ‘미스터엔’으로 불린 인물. 도쿄(東京) 도심 아카사카(赤坂)의 게이오대 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G7회의의 전망과 한국 경제의 과제 등에 대해 명쾌한 어조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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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회의에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낼 것으로 보는가.

“달러화 약세를 희망하는 미국과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일본 및 유럽연합(EU)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 합의에 이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다른 회원국의 요구에 응할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공동성명은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작성될 것이다.”

―작년 8월 두바이 G7회의 때는 ‘유연성(Flexibility)’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돼 달러화 가치가 급락했는데….

“이번엔 일본 외에 EU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어 지난번 회의와는 다르다. 일본과 EU는 급격한 달러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안정’이라는 표현을 넣자고 주장할 것이다. 미국이 고집해 ‘유연성’이란 표현을 집어넣더라도 시장의 충격을 줄일 수 있도록 안전장치가 강구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유연성이라는 표현이) 아예 빠질 확률이 더 높다고 본다.”

―일본과 EU가 공동전선을 펴면 협상력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달러화 약세를 바라는 점에서는 이해가 일치하지만 공동전선을 펼 정도는 아니다. EU는 일본의 시장개입에 비판적일 뿐 아니라 일본이 무리하게 엔화 가치를 낮추려 하는 바람에 유로화 가치가 높아졌다는 피해 의식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G7회의가 끝난 뒤 달러화 가치는 더 떨어질 것이 확실한가.

“신이 아닌 이상 점치는 것은 불가능하다(웃음). 하지만 미국이 달러화 약세를 용인하는 이상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시적으로는 달러당 100엔이 깨지는 상황도 오지 않을까.”

그러나 사카키바라 교수는 “환율은 기본적으로 해당국의 경제 실체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미국 경제가 호조인 점을 감안할 때 달러화 가치 하락이 아시아 국가들이 염려할 만큼 급격하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달러화 약세가 계속되면 미국에 투자한 자금이 빠져나가 미국 주가가 떨어지고 ‘미국발 세계 주가 연쇄 폭락’으로 번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민간자금은 빠져나갈지 모르지만 한국 일본 중국 등 각국 정부가 투자한 돈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세계 공황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미국 경제의 회복이 더뎌 자금이탈 규모가 늘어나면 증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본 경제는 최근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 장기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난 것인가.

“과거와 같은 호황이 오기는 힘들지만 불황에서 탈출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불황을 거치면서 기업들의 수익성과 생존능력이 강해졌다.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이 성장한 것도 일본 경제의 재기를 도왔다. 한국도 중국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앞으로 경제 발전을 좌우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한국 경제는 소비 위축과 정책 실패가 겹치면서 침체에 빠져 있다. 어떻게 보는가.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경제 전반에 ‘거품’이 생겼고 그 거품이 꺼지면서 침체가 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신용카드 부실에서 드러났듯이 현실 경제의 기반이 얇은 상태에서 소비에만 의존하는 경제 운용에는 한계가 있다. 거품의 혜택은 달콤하지만 그 대가는 고통스럽다는 점을 확인했다면 그것도 성과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이 도입한 미국식 개혁이 일부 성과를 거둔 건 사실이지만 이제는 한국의 특성과 경제발전 단계에 맞는 모델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교수▼

△1941년생

△일본 도쿄대 경제학부 졸업,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 박사(1969년)

△1995∼99년 일본 대장성 국제금융국장 및 재무관

△재무관 시절 국제 금융계에 막강한 영향력 발휘해 ‘미스터 엔’으로 불림

△1999년부터 게이오대 교수로 재직

△저서:‘문명으로서의 일본형 자본주의’ ‘외환을 알면 세계를 알 수 있다’ ‘구조 디플레의 세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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