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창희/'경제안보'를 생각하자

  • 입력 2003년 11월 18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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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도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는 외견상 큰 불협화음 없이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안정화가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다급한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의 추가 파병 약속에 대해 그 규모가 어찌됐든 일단 사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번 SCM 결과는 한미 양국 모두에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다.

원래 SCM은 대외적으로는 베트남전이 한창이고, 한반도에서는 1·21무장공비침투사태,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등으로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던 1968년, 미국의 대한반도 안보공약을 확고히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한미안보協 갈등 조정 필요 ▼

통상 SCM은 사전에 실무자들이 주요 의견을 조율하고 양국 국방 수뇌부가 이를 확인하는 의례적인 자리다. 하지만 금년의 경우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 규모 및 임무를 둘러싼 ‘이견’과 용산 미군기지 이전 문제 등이 말끔히 조정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양국 장관이 만나기 직전까지 용산 잔류 미군부지의 규모와 연합사 후방 재배치 등의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은 한미동맹이 최상의 상태에 있지는 않음을 보여줬다.

주목할 점은 이번 공동성명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개념을 명시했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은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SCM에서도 중장기 한미동맹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려다 유야무야된 적이 있었다.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라는 개념은 금년에 시작된 소위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탈냉전 상황에서 미일동맹의 존속 필요성에 대한 회의가 대두하면서 미국은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통해 주일 미군의 역할을 지역안보 수단으로 변경했다. 이듬해인 1997년 일본은 신방위협력지침을 통해 주일 미군의 역외 작전에 자위대가 적극 지원하는 방식으로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넓히는 동맹의 재조정을 완료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란 말의 속뜻은 주한미군을 중기갑 부대 중심의 대북 전력구조에서 역외 지역분쟁에 신속 대응할 수 있는 기동성 있는 부대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이 상정하는 주한 미군의 역할에는 대테러전, 동아시아 전역은 물론 미 태평양군 관할지역인 중동의 지역 분쟁에 대응하는 것까지 포함될 수 있다.

문제는 한반도에 아직 전쟁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은 노동당 규약에 여전히 한반도의 적화통일 의지를 명시하고 있고, 핵과 미사일로 국제사회를 상대로 위험한 협박 외교를 하고 있다.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확고히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한미군의 후방 재배치가 서둘러 논의되고 신속대응군으로의 재편이 검토되고 있는 것에 대해 한국민이 의아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정부는 가능한 한 주한 미2사단 재배치를 핵문제 해결 이후로 미루는 것이 옳다. 9·11테러를 경험한 미국은 해외 주둔 미군부대의 ‘생존성’ 문제에 갈수록 민감해지고 있다. 미국의 전 세계적인 재배치 계획 속에서 혹시 미국의 대한반도 안보 공약이 표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충분히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재배치 논의 核해결 뒤에 ▼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미래방향성 논의는 50년간 지속된 한미동맹의 성과를 재창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싶다. 한미동맹의 신뢰가 흔들리면 외국인의 국내투자 감소와 한국 금융의 불안정화와 같은 경제안보의 손실이 올 수 있다.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법론에서 불거진 한미간의 전략적 마찰은 역사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 기타 많은 동맹관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른바 대미 자주론의 명분을 더욱 값지게 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경제안보의 실익이라는 현실적 판단을 기본으로, 적절한 중용의 도를 취해야 한다.

이 점에서 미국의 전략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현재 및 미래 한미동맹의 방향성을 슬기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 지미파(知美派) 전문관료의 소중한 경험을 사장(死藏)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남창희 인하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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