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지성’에 도전장 낸 前대통령

  • 입력 2003년 11월 16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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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데스탱 사진 설명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연합(EU) 헌법 초안의 ‘산파’이기도 하다. 사진은 6월 13일 유럽의회가 EU헌법 초안을 채택한 직후 데스탱 전 대통령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연설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투데이 데스탱 사진 설명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연합(EU) 헌법 초안의 ‘산파’이기도 하다. 사진은 6월 13일 유럽의회가 EU헌법 초안을 채택한 직후 데스탱 전 대통령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연설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77)은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1635년 창설된 프랑스 최고 권위의 한림원. 학자 문인으로 구성된 종신회원 40명 가운데 결원이 생길 때만 회원 비밀투표를 통해 신입 회원을 받는다. 회원으로 뽑힌 사람은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인정받는다. 회원들에 대한 칭호가 ‘불멸인(不滅人)’일 정도.

데스탱 전 대통령은 프랑스어권의 대시인이었던 레오폴 상고르 세네갈 전 대통령의 타계로 공석이 생기자 이달 초 회원에 입후보했다. 데스탱 전 대통령이 내세운 문필작업 경력은 소설 한 편과 회고록, 수편의 정치논문 등. 그는 다음달 11일 4명의 다른 후보 작가와 함께 아카데미의 심사를 받는다.

그러나 대통령에다 최근까지 유럽연합(EU) 헌법 기초위원회 의장을 지낸,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경력을 가진 그도 ‘불멸인’이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회원에 입후보한 직후부터 학계와 문단에 논란이 일더니 마침내 지난주 현 회원인 모리스 드뤼옹(85)이 언론 기고를 통해 ‘데스탱이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짚었다.

첫째, 그의 글은 내세울 만한 게 없다.

둘째, 그는 1974년 대통령 취임 직후 외국기자들과 영어로 회견했다. ‘프랑스어 보호’를 제1 목표로 삼는 아카데미 회원으로 부적합하다.

셋째, 그는 회고록에서 ‘대통령 시절 가끔 여성 장관의 드러난 허벅지를 보는 게 싫지 않았다’고 썼다. 매우 인간적이지만 상고르 같은 현자(賢者)의 뒤를 잇기에는 부적절하다.

넷째, 프랑스 대통령 출신을 받아들이면 선례가 된다. 자크 시라크가 임기를 마친 뒤 회원이 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카데미 원장을 지낸 드뤼옹씨의 기고는 내부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회원 가운데 데스탱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그의 입김으로 회원에 발탁된 사람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비밀투표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

데스탱 전 대통령은 과연 ‘최고 권력자’와 ‘최고의 지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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