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문홍/이라크 파병, 찬반 논리의 함정

  • 입력 2003년 9월 16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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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가 더 뜨겁게 데워져 우리 손에 놓였다. 이라크 파병 문제다. 4월 우여곡절 끝에 공병-의료부대를 보낼 때에도 우리 손은 거의 델 지경까지 갔었다. ‘감자’를 잘못 다루면 이번에는 화상을 입을 수 있다.

미국은 지금 전투병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폴란드형 사단’처럼 다국적군으로 구성된 사단을 한국군이 맡아 지휘해 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파병 규모도 만만치 않다. 미 육군은 현재 33개 전투여단 중 21개 여단을 해외에 배치하고 있다. 이 중 16개 여단이 이라크에 주둔 중이다. 전쟁 때가 아니라면 병력의 3분의 2는 국내에 있어야 한다는 병력운용 원칙에 한참 어긋난다. 아프가니스탄전쟁에 연이은 이라크전쟁으로 병사들의 피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휴식과 재충전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내년에 재선을 노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사정이 딱하게 됐다. ‘나 홀로’ 시작한 전쟁이지만 끝마무리까지 홀로 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문제는 파병의 명분이다. 진보단체들은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전투병을 보내는 것은 사대주의적 굴종”이라며 벌써부터 반전(反戰)의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 이라크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이들의 주장처럼 우리 군인이 그곳에서 테러에 희생된다면, 그리고 거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이라크는 우리에게 ‘제2의 베트남’이 될 수도 있다.

반면 보수단체들은 한미동맹 관계를 고려할 때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기는 어려운 게 아니냐며 파병의 불가피성을 내세운다. 파병을 결정하면 현재 진행 중인 주한미군 재배치 논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 참여에 유리하며, 우리 군의 실전 훈련기회도 된다면서 현실론을 편다.

양쪽 주장 모두 일리는 있다. 하지만 상대편 논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진보 쪽 주장대로 한국이 파병을 거부한다면 한미관계는 더 나빠질 게 뻔하다. 그러면 북핵 공조도 느슨해진다. 이건 바로 북한이 바라던 바다. 노동신문은 엊그제에도 “남조선 당국은 파병이 가져올 엄중한 후과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하며…” 운운했다.

그렇다고 보수진영의 말처럼 ‘화끈하게’ 미국을 돕겠다고 나서기도 여의치 않다. 파병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는 것도 문제지만, 사상자가 나올 경우 국내 여론이 조용할 리 만무하다. 주한미군 재배치 협상에 유리할 것이라지만 그것도 결국 정부의 협상력에 달린 문제다.

결정은 정부의 몫이다. 양쪽 모두 국익을 내세우지만 무엇이 과연 국익을 위해 최선의 선택인지 정부가 판단해야 한다. 일단 결정을 했으면 그 선택이 정말로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후속 협상에 만전을 기하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이다. 정부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 정부 결정에 반대한 국민도 납득할 수 있지 않겠는가.

노무현 정부가 집권한 이래 우리 사회에는 이런저런 갈등이 끊일 새가 없었다. 이라크 전투병 파병문제가 또 하나의 내부갈등으로 귀결된다면 국민은 이 정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찬반 논리의 눈치나 볼 때가 아니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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