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샤프완' 현지르포]굶주린 주민 구호품 쟁탈전

  • 입력 2003년 3월 27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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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이라크 국경이 열렸다.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 지 6일 만에 전투병력이 아닌 민간인들이 이라크 땅에 발을 내디뎠다.

쿠웨이트 구호단체인 ‘적신월사(Red Crescent)’는 대형 트럭 5대에 ‘쿠웨이트인들이 이라크의 형제들에게 드립니다’는 문구가 적힌 구호물자를 싣고 이라크 국경 마을 샤프완에 도착했다.

쿠웨이트시에서 80번 도로를 따라 북상한 지 불과 3시간 만이다. 국경선의 철조망에는 역삼각형의 붉은 표지판에 하얀 글씨로 ‘MINE(지뢰)’이라고 적혀 있었다. 비무장지대에는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이곳을 지켰던 유엔감시단(UNIKOM) 요원들의 막사가 눈에 들어왔다. 요원들이 모두 철수하고 텅 빈 막사에는 파란색 유엔 깃발만 바람에 흔들렸다.

구호 트럭과 취재 차량 20여대의 북상 행렬 옆으로는 소총 탄환 탄약 수천 통과 대전차 토 미사일 등을 가득 실은 영국군 군용트럭 20여대도 나란히 달렸다.

국경을 지났지만 쿠웨이트와 다를 바 없는 사막 지대다. 하지만 삶은 천국과 지옥의 차이였다. 도착하자마자 아수라장이 됐다. 이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영국군과 적신월사 자원봉사자들은 이 마을 주민 50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 벌이는, 그야말로 필사적인 구호품 쟁탈전에 손을 들고 뒤로 물러났다. 트럭 뒷문이 열리자 청년 2명이 트럭 안으로 들어가 구호상자들을 모여든 사람들 위로 미친 듯이 던졌다. 신발들이 벗겨지고 상자에 머리를 맞았다. 상자를 나르기 위해 자전거, 손수레, 소형 트럭 등 운반 수단이 총동원됐다.

힘있는 사람들은 더 가져가고 남편이 없는 여자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상자 하나를 챙긴 나필 알리 후신(23)은 “먹을 빵이 없다. 생활이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어른들 틈에서 어렵게 비닐봉지 하나를 차지한 한 아이는 바로 종이팩을 물어뜯어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구호품은 반겼지만 전쟁에 대한 이곳 주민들의 반응은 혼란스러웠다. 100여명의 주민들은 팔을 쳐들고 ‘굿 사담(사담 후세인 좋다)’이라고 외쳤다. 주민 하시미드(22)는 ‘미국은 이라크인들의 해방전쟁이라고 하는데 동의하는가’라는 서방기자의 질문에 “해방감은커녕 굴욕감만 느낀다. 미국은 우리를 해방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자원(resource) 때문에 왔다”고 답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한 노인이 다가와 “미군의 공습으로 가족 2명이 숨졌으며 남은 사람 몇 명도 크게 다쳤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라고 호소했다.

이라크 정권을 쥔 이슬람 수니파와는 달리 시아파인 이들은 91년 걸프전 때 후세인 정권이 무너질 것으로 생각하고 언론을 통해 미군을 찬양한 주민들이 나중에 보복 학살당한 기억이 선명하다. 한 주민은 기자에게 다가와 주위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사담 후세인, 노(No), 노”라며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구호품 쟁탈전의 와중에서도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면 얼굴을 가리고 손을 내저었다. 트럭 문을 연 지 1시간20분 만에 트럭 안이 깨끗이 비워졌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들의 얼굴엔 여전히 전후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샤프완〓김성규특파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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