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동시테러]“동시테러 조직력 알 카에다밖에…”

  • 입력 2002년 11월 29일 18시 06분



이스라엘인들을 노린 28일 연쇄 테러의 범인으로 또다시 알 카에다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이스라엘 군 라디오방송이 밝힌 테러범 이름이 미 연방수사국(FBI)이 알 카에다 조직원으로 수배해 놓은 인물과 같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아직 FBI는 이를 공식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도 선뜻 알 카에다의 소행으로 단정짓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알 카에다에 가장 먼저 의혹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정도 테러라면 알 카에다가’〓케냐와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이나 테러 전문가들이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를 배후로 지목하는 첫째 이유는 호텔과 전세 여객기를 겨냥한 동시 테러가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조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발리 폭탄테러도 인도네시아 원리주의 단체인 제마 이슬라미야(JI)가 알 카에다의 지원을 받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폭탄을 가득 실은 차량을 사용한 점도 알 카에다의 단골 수법이다.

둘째는 알 카에다가 몸바사 등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상당한 활동기반을 구축했다는 점. 실제로 알 카에다의 군사작전 책임자인 모하메드 아테프와 고위 지휘관인 알리 모하메드는 1994년 케냐로 들어가 나이로비 등 미 대사관에 테러공격을 가한 1998년 8월까지 머물렀다. 빈 라덴은 1991∼1996년까지 수단에 체류하면서 다른 이슬람 과격 조직들과 연대를 구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달 초 공개된 빈 라덴의 녹음 테이프에 미국뿐 아니라 그 우방인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테러를 예고한 대목이 들어 있는 것도 알 카에다와의 연계설을 뒷받침한다.

▽서방국, “의심은 가지만 연계 여부는 불명확”〓존 말란 사웨 이스라엘 주재 케냐 대사와 테러 현장을 시찰한 무살리아 무다바디 케냐 부통령은 즉각 알 카에다를 배후단체로 꼽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 활동하는 친(親)이란계 이슬람단체 헤즈볼라도 알 카에다와 함께 용의선상에 올려놓았다. 민항기를 공격한 대공 견착식 미사일이 이미 헤즈볼라의 수중에 들어가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또 테러가 저질러진 28일은 1947년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 채택 55주년과 이스라엘의 최고 명절인 ‘하누카’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은 아나톨리 사포노프 러시아 외무차관의 말을 인용,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가 재규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지만 이번 테러와 알 카에다를 직접 연계시키진 않았다. 고든 존드로 미 백악관 대변인도 “알 카에다와의 연계 여부는 아직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케냐 “우리가 무슨 죄”▼

28일 케냐의 항구도시 몸바사에서 이스라엘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폭탄테러로 9명의 케냐인이 숨졌다.

98년 8월 7일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있는 미국대사관에 대한 폭탄테러로 200여명이 사망한 데 이어 또다시 자국인들이 테러의 희생물이 되자 케냐인들은 “왜 우리가 남들의 분쟁에 대가를 지불해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현지발 기사에서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 “이제 테러라면 지긋지긋하다”는 주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현장을 방문한 삼 온제리 케냐 복지부 장관은 “케냐는 모든 국가와 우호관계를 맺고 있으며 누구와도 적대관계가 아니다”며 “이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했다.

이번에 숨진 케냐인 9명 중 7명이 호텔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공연하는 무용수들. 워싱턴포스트는 “우리가 잘못한 게 뭐냐”는 동료 무용수들의 반응을 전했다. 이번 테러로 연간 1인당 국민소득이 365달러(약 40만원)밖에 안 되는 케냐에서 관광수입이 격감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24년째 집권하고 있는 다니엘 아랍 모이 대통령의 독재로 국내 정정이 불안한 것도 테러리스트들을 케냐로 불러들이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92년에 처음으로 다당제를 도입한 모이 대통령은 그동안 종족간 분쟁을 조장하고 선거제도를 농락하는 등 갖은 방법을 통해 정권을 연장해 왔다. 헌법에 따르면 그는 다음달에 있을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나 꼭두각시를 대신 출마시키고 자신은 막후에서 여전히 권력을 휘두를 음모를 꾸미고 있다.

다행히 이번 대선에선 야당이 전국무지개연합(Narc)으로 후보 단일화에 성공함에 따라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정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측과의 대립이 더 격화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어느 때보다 폭력과 부정이 판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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