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야스쿠니 신사참배 배경

  • 입력 2002년 4월 21일 18시 28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21일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전격 참배한 것은 한국과 중국의 뿌리깊은 반발과 국내 정치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그는 참모들과도 상의하지 않고 참배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우선 한중(韓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달에는 한일 월드컵이 열린다. 9월은 중일 수교 30주년이다. 지난해 역사교과서문제로 촉발된 한일, 중일간의 불편한 관계가 요즘 겨우 회복단계다.

만약 월드컵이 끝난 뒤인 8월에 참배할 경우 한국측은 “월드컵 공동 개최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배신감을 느낄 것이 틀림없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지난달 서울에서 고이즈미 총리를 만났을 때 “참배가 양국관계에 악영향을 줘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중일수교 30주년을 앞두고 중국과의 관계도 냉각될 것이 틀림없다. 중국 지도부도 그동안 중국을 방문하는 일본 정계지도자들에게 여러 차례 주의를 환기시켜 왔다.

따라서 고이즈미 총리로서는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는 심정으로 참배를 결정했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또 ‘이번에 하면 항상 분위기가 더 험악해지는 8월에는 하지 않아도 되니 이해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안할 수는 없다〓기본적으로 보수 우파인 고이즈미 총리는 총리가 되기 전이나 된 후에도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따라서 안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에도 종전일인 8월 15일에 하지 않고 8월 13일에 했다고 해서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참배를 요구하는 일본유족회는 자민당의 최대 지원단체다.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지지율도 최근 급격히 떨어져 이같은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갑작스러운 참배는 찬반논쟁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지난해에는 “한다” “안한다”로 이 문제가 계속 쟁점이 됐고 이로 인한 정치적 부담이 작지 않았다. 이번에도 ‘찬반논쟁’이 일겠지만 오래 가지는 않을 것으로 총리측은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전망〓향후 파장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중이 비난은 하겠지만 지난해 참배 때나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때처럼 관계가 냉각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고 또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집중적인 물밑 설득작업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그러나 한중으로선 어떤 형태로든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실익도 없이 일본에 지나치게 유화적이고 개방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한국의 김대중 정부로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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