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국립대 ‘기업 경쟁원리’ 도입

  • 입력 2002년 3월 27일 18시 04분


일본 99개 국립대의 ‘독립법인화’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독립법인화는 국가의 보호에 안주해 온 국립대에 기업의 경쟁원리를 도입하기 위한 것. 법인화되면 국가의 지휘 감독에서 벗어나면서 재량권이 늘어나지만 교직원의 신분은 ‘국가공무원’에서 각 대학이 채용하는 직원으로 바뀌고 급료에도 차이가 생기게 된다.

문부과학성 산하 ‘국립대 독립법인화 조사검토위원회’는 26일 “전 국립대를 2004년에 일제히 독립법인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최종의견서를 제출했다. 문부과학성은 이를 토대로 법안을 만들어 내년도 정기국회에 제출하고 2004년부터 실행에 옮길 방침이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일본 국립대는 학교 운영에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법인화되면 경상비는 지금처럼 국가에서 받는 교부금으로 충당하지만 사용처에 구애를 받지 않고 대학이 독자적으로 결정한 목표와 계획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 그 대신 각 대학은 6년 간의 중기목표와 계획을 세워 외부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또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립대학평가위원회’가 각 대학의 실적을 평가해 운영비의 증감 여부를 결정한다.

일본 국립대 독립법인화 골자
항목내용
교직원 신분국가공무원자격 상실, 각 대학이 채용. 대신 교직원은 다른 기업의 사외이사 등 겸직가능
총장 권한대폭강화. 임원회의를 두어 대학의 사업계획이나 예산심의. 그러나 경영과 교육 양면에 최종 책임. 경영은 ‘운영협의회’, 교육은 ‘평의회’를 설치, 지도를 받음. 임원회의와 운영협의회에는 외부인사를 반드시 포함해야
재정 운용국가에서 받는 교부금은 지금처럼 받지만 사용처는 대학이 결정. 대학이 수익사업을 할 수 있고 장기융자 받는 것도 가능. 다른 법인에 대한 출자도 가능. 남은 예산은 다음해로 넘길 수도 있고 지방자치단체의 기부금도 자기수입으로 처리
조직 개편교직원수, 학생정원, 학과의 설치 및 폐지, 부속학교나 기관의 독립여부도 결정가능. 외국인 총장 초빙도 가능
등록금국가가 정한 일정한 틀내에서 자유롭게 결정 가능
목표설정 및 평가대학은 6년단위의 중기목표와 계획을 만들어 전문가들로 구성하는 외부기관인 ‘국립대학평가위원회’(가칭)에 제출. 위원회는 이를 토대로 목표달성여부와 연구수준 등을 평가하고 국가는 이에 근거해 교부금의 액수를 증감.
시행목표2003년 정기국회에 법안을 제출해 2004년부터 일제히 시행

대학은 신제품을 만들어 파는 등 수익사업을 하거나 융자도 받을 수 있고, 대학별로 차이가 없었던 수업료도 국가가 정한 폭 내에서는 각 대학이 자유스럽게 결정할 수 있다. 교직원 수나 학생정원, 학과의 신설 및 폐지, 부속 초중고교나 부설기관의 독립 여부도 대학이 결정한다.

총장은 법인의 장으로 권한이 대폭 강화되지만 경영과 교육 양쪽에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 총장은 자신이 임명하는 임원들로 임원회의를 구성해 사업계획이나 예산 등을 논의한다.

또 경영은 학외 인사들도 다수 참여하는 ‘운영협의회’를, 교육은 단과대학장들로 구성하는 ‘평의회’의 지도를 받아야 하며 총장은 두 기관의 대표들로 구성된 ‘총장선출위원회’에서 선출한다.

약 12만명에 이르는 대학교수와 교직원들은 모두 ‘국가공무원’의 자격을 잃고 대학별로 채용한다. 공무원이 아니므로 교수 등은 다른 기업의 사외이사 등을 겸직할 수 있다. 또 외국인도 총장으로 초빙할 수 있다.

국립대학의 독립법인화는 원래 ‘작은 정부’를 위해 공무원 수를 줄이기 위한 발상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논의가 진행되면서 국립대학에도 ‘적자생존의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당초 국립대들은 이 안에 반대했으나 지금은 ‘저항’을 포기한 상태다. 대신 국립대학 간의 합병을 통해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I think…일본 국립대 전문가 진단▼

국공립대학의 공사화는 세계적 추세다. 일본뿐만 아니라 국공립대학이 많은 유럽 국가들도 이미 90년대부터 도입해 왔다. 대학등록금 및 교과과정 자율화, 독립채산제 도입 등 대학에 독자경영권을 주고 정부는 국가경쟁력과 관련된 연구나 학생 장학금, 교수 복지 등에 대해 간접 지원하는 방식이다.

부작용도 예상된다. 지나친 경쟁체제로 가다보면 돈이 되는 학문에만 치중, 자칫 학문이 편중돼 교육이 획일화될 수 있다. 대학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대학 경영에 대한 책임이 담보되지 않으면 자칫 교육의 질을 관리하는 데 실패해 결국 학생들만 피해를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공무원 신분을 잃게 되는 교직원들의 반발도 우려된다.

한국도 장기적으로는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는 만큼 우리 상황에 맞게 신중히 연구한 뒤 도입해야 한다. 대학에 자율적 예산편성권과 인사권, 경영전략을 독자 수립할 수 있는 권한을 제한적으로 주고 경과를 지켜본 뒤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또 갑자기 도입할 경우 자생력이 없는 일부 국립대가 학생 유치 등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해 기능분화를 통한 특화나 인접 국립대와의 연계강화 등 생존전략을 먼저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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