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분쟁]어민들 "우린 어떻게 살라고" 시름

  • 입력 2001년 10월 12일 18시 34분


일본과 러시아가 남쿠릴열도 주변 수역에서 제3국 꽁치어선의 조업을 금지키로 사실상 합의한 것은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과 러시아는 또다른 당사자인 한국을 배제하면서 각각 ‘영토적 명분’과 ‘경제적 실리’를 얻었다.

한국 꽁치 수급량(약 4만5000t)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남쿠릴 어장의 상실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어민들은 앞으로의 생계를 걱정하며 반발하고 있다.

▽러-일 합의 배경〓문제의 남쿠릴열도는 현재 공식적으로는 러시아의 영토. 2차대전 패전 이전까지는 일본령이었으나 종전 후 러시아측 영토가 됐다. 그러나 일본은 ‘북방 4개 섬’으로 부르는 이 지역을 자국령으로 간주하면서 반드시 되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측 시각에서 보면 남쿠릴열도 수역에서의 한국어선 조업은 일본영해 침범이라는 논리로 귀결된다. 따라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보상 등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한국어선의 조업을 막고 러시아측과의 협상을 통해 남쿠릴열도를 되돌려 받겠다는 것이 일본측의 기본방침이다.

러시아도 당초 이 같은 일본의 정치적 의도를 파악해 한국어선의 조업금지에 부정적이었으나 일본이 끈질기게 경제적 보상이라는 ‘당근’을 제의하자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또 외교적으로도 한국보다 일본을 중시하는 러시아로서는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이 길어지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현재 남쿠릴열도 수역에서 조업중인 한국 북한 우크라이나 대만 등 4개국으로부터 러시아가 받는 입어료(350만달러로 추정) 이상으로 보전해 주겠다고 러시아를 회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꽁치분쟁’의 경과〓일본은 그동안 “남쿠릴열도 수역에서의 조업은 안 된다”고 여러 차례 한국측에 통보했으나 8월 1일 한국 어선의 남쿠릴열도 꽁치조업이 시작되자 한국을 설득하는 대신 모든 외교력을 러시아에 집중했다. 일본은 같은 달 20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유감을 담은 친서를 러시아측에 전달했다.

바로 다음날인 21일 이고리 파르후트디노프 사할린 주지사는 “남쿠릴열도 수역에서의 제3국 조업을 반대한다”며 일본측 입장에 동조했다.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외무부 차관도 “이 문제가 러-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일본과 노력할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한국 조업 배제’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 러시아는 이 과정에서‘이중 플레이’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한국측에 10여차례나 “일본이 국내 정치를 의식해 순수 어업문제를 계속 정치 쟁점화한다면 러시아도 강경 대응할 것“이라는 의견을 전달했으나 결국 등을 돌렸다.

▽어민들 “우리더러 죽으라는 것”〓한국원양어업협회는 “산리쿠 수역의 조업이 불가능해지고 남쿠릴열도 수역의 꽁치어장마저 잃게 되면 꽁치조업 자체가 완전 중단되고 만다”며 “근해에서 잡히는 꽁치가 연간 1만5000t에 불과해 꽁치가격 상승은 물론 수급 자체도 큰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희섭(朴熙燮) 원양어업협회 꽁치봉수망 분과위원장은 “남쿠릴열도 수역의 꽁치어장을 대체할 만한 어장은 현실적으로 없다고 봐야 한다”며 “꽁치를 잡는 업체들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원양어업협회측은 “정부는 도대체 지금까지 무얼 했느냐”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책마련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동원기자>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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