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러와의 장기전 예고 배경

  • 입력 2001년 9월 17일 16시 44분


미국이 16일 뉴욕과 워싱턴 등에 연쇄 테러를 저지른 테러범들과의 전쟁이 장기전이 될 것이라고 예고함에 따라 국제사회에 상당 기간 두터운 전운(戰雲)이 드리워질 전망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외교안보팀은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주말을 함께 보내며 전쟁 대책을 숙의한 뒤 이날 국민에게 몇 년 간에 걸쳐 진행될 수도 있는 21세기의 첫 전쟁 에 대해 인내심을 가져줄 것을 일제히 당부했다.

부시 대통령은 헬기편으로 백악관에 도착한 직후 보도진과 만나 "테러와의 이번 전쟁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미국인들은 인내심을 가져야만 한다" 며 "나도 인내심을 가질 것" 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11일 발생한 사상 최악의 테러참사에 대한 군사적 대응에 돌입하기도 전에 장기전을 예고한 것은 테러를 단기간에 뿌리뽑기가 사실상 매우 힘들다는 현실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딕 체니 부통령은 이날 NBC TV와의 회견에서 "걸프전 당시엔 적이 어디에 있는 지가 분명했기 때문에 공격이 수월했으나 숨어 있는 테러리스트와 조직을 찾아내야 하는 이번 전쟁에선 걸프전처럼 단기간에 분명한 승리를 거두기가 어렵다" 고 고충을 토로했다.

미국은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은신중인 오사마 빈 라덴을 이번 테러의 유력한 배후로 보고 있지만 그의 소재가 확인되지 않는 상태에서 먼저 군사행동을 취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있다.

98년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대사관에서 발생한 테러로 미국인 12명을 포함해 모두 220명이 숨졌을 때도 미국은 빈 라덴을 응징하기 위해 그의 거점으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의 테러리스트 훈련 캠프 5곳에 토마호크 미사일 75발을 발사했으나 빈 라덴은 멀쩡했다.

게다가 공격대상이 됐던 캠프는 당시 사용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미국을 곤혹스럽게 했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번엔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기관을 총동원해 빈 라덴이 숨은 곳을 먼저 정확히 찾아내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군사공격을 감행하는 경우에도 레이더 등 첨단 추적장치를 이용한 미사일 공격 및 공중 폭격은 대형 군사시설이나 장비를 파괴하는 데는 위력적이지만 테러리스트들이 숨은 산악지역의 동굴이나 천막 등을 파괴하는 데는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특수부대 투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

또 빈 라덴을 체포하거나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조직이 미국을 겨냥해 새로운 보복 테러를 감행할 개연성이 있다는 것도 미국의 즉각적인 군사행동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다.

미국은 이같은 사정을 고려해 빈 라덴 뿐만이 아니라 미국을 노리는 모든 테러 조직과 테러 비호 국가를 완전히 뿌리뽑기 위한 전면전을 벌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자면 자연 몇 년 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싸움을 벌이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이렇게 되면 미국인들은 평상시 생업에 종사하면서 한편으론 테러와 싸움을 벌여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테러와의 결연한 전쟁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부시 대통령이 미국인에게 평상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면서도 앞으로 국민의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음을 강조한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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