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추모의 날’ 뉴욕방문 국난극복 호소

  • 입력 2001년 9월 16일 18시 57분


갈색 잠바 차림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내자 구조대원과 자원봉사자들은 성조기를 흔들며 “USA(미국), USA, USA”를 뜨겁게 외쳤다.

14일 오후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빌딩 앞. 부시 대통령은 전대미문의 테러로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한 미국 자본주의 상징의 흔적을 참담한 표정으로 둘러본 뒤 시커멓게 탄 소방차 위에 올라 자원해서 구조작업에 나선 은퇴 소방대원(69)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메가폰을 잡았다.

부시 대통령의 인사말이 환호에 묻히자 뒤쪽에서 누군가가 “들리지 않는다”고 소리쳤다. 이에 부시 대통령은 “나는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며 “전세계가 여러분의 말을 듣고 있고 이 빌딩을 무너뜨린 자들도 곧 우리 모두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는 이어 “온 나라가 여기 있는 모든 분에게 사랑을 보내고 있고, 이 나라를 자랑스럽게 만든 여러분에게 감사한다”며 구조대원들을 향해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라고 말했다.

며칠간 사력을 다한 구조작업에 지친 소방대원 등은 대통령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격려에 힘을 얻은 듯 뜨거운 박수로 호응하며 다시 “USA”를 연호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부시 대통령은 스산한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워싱턴의 국립 대성당에서 열린 테러희생자 국가 추모예배에 참석해 “슬픔과 비극 분노는 오직 시간의 몫”이라며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했다.

워싱턴 대주교 제인 딕슨 추기경과 빌리 그레이엄 목사, 유대교 랍비 조수아 하버만, 이슬람교 지도자 무자밀 시디치 등 각 종교의 지도자들이 나서 이번 참사로 숨진 사람을 애도하는 동안 부시 대통령은 시종 침통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전날 백악관에서 테러에 대한 결연한 대응의지를 밝힐 때도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분노에 몸을 떨었다. 미국인들은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태도에서 상당한 위로를 받은 것처럼 보인다. 테러 당일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을 오래 비운 것을 비판했던 언론도 이젠 그를 중심으로 국난을 극복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테러 희생자를 위한 국가 기도와 추모의 날로 정한 14일 미국 내 50개 주에선 비명에 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일제히 열렸다. 영국 캐나다 대만 등 여러 나라에서도 인류 공통의 위협으로 대두한 테러를 규탄하고 이번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렸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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