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15년역사]우주서 살고싶은 인간 꿈 실현

  • 입력 2001년 3월 22일 18시 30분


미르호는 인류의 우주개척사에 획을 그었다. 우주공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인간의 꿈을 이룩한 것이다.

미르는 한때 우주개발을 주도했던 러시아(구 소련)의 우주과학기술 전성시대를 상징하기도 한다. 57년 최초의 무인우주선 ‘스푸트니크’를 쏘아올려 우주시대를 열었던 구 소련은 71년 무인우주정거장 살류트 발사에 성공했다. ‘유인 우주정거장 계획’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86년 2월 미르의 핵심 모듈이 우주공간에 완성됐으며 한달 뒤에는 두 사람의 우주비행사가 미르에 도착해 15년 동안의 ‘미르의 모험’이 막을 올렸다.

▽우주에서의 국제협력〓미국 등 세계 각국이 미르의 운영에 참여해 공동실험을 했다. 운영비 조달 어려움 탓도 있기는 하지만 미르는 우주에서의 본격적인 국제 협력 무대가 되었다.

93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 미르에 도착한 노먼 태거드를 비롯해 11개국 42명의 외국인 승무원이 미르를 거쳐갔다. 89년 12월에는 일본 TBS TV 아키야마 도요히로 기자가 미르에서 최초로 우주 생방송을 했다. 95년 6월 미르는 미국의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와의 도킹에 성공했다. 75년 미국 우주선 아폴로와 구 소련 소유즈의 도킹 후 20년 만에 미―러가 우주공간에서 만난 것.

당초 소련은 독자적으로 미르 2를 발사하려 했으나 재정난에 빠지자 90년 국제 협력을 제안했으며 이것이 계기가 돼 현재 국제우주정거장(ISS) 건설이 시작됐다.

▽위기〓미르의 위기는 소련의 붕괴와 함께 찾아왔다. 경제난으로 89년 운영자금을 마련할 수 없게 되면서 5개월간 미르는 승무원 없이 궤도를 돌아야 했다. 러시아 정부는 해마다 운용자금을 마련하느라 쩔쩔맸다. 수리를 제때 하지 못해 1500여 차례 고장을 일으켰으며 때로는 우주비행사들이 위험에 빠졌다.

97년은 최악의 해였다. 2월에 산소재생기가 폭발했을 때에는 승무원의 철수까지 검토됐다. 6월에는 도킹 중 충돌사고가 일어났다. 주컴퓨터가 고장나 미르가 2차례나 궤도를 이탈한 적도 있다. 결국 러시아 정부는 99년 “재원이 확보되지 않으면 2000년 상반기 미르호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했으며 8월 승무원을 귀환시켰다.

▽구원 노력〓“소련 붕괴 후 남은 러시아의 유일한 자존심인 미르를 포기할 수 없다”는 여론이 러시아에 거세게 일었다. 낡았지만 수명 연장도 가능하다는 이유도 있었다. 미국계 다국적 기업인 골드 앤드 어팰(Gold & Appel S.A)은 지난해 1월 미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조건으로 2000만달러 투자를 약속하고 미르 운영회사인 러시아의 에네르기야와 합작으로 미르코프(MirCorp)를 설립했다. 미르의 수명이 연장된 것이다. 미르코프는 미르를 우주관광지나 영화촬영 장소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4월 2명의 우주비행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추가자금확보에 실패하면서 미르코프 역시 사업을 포기했다.

▽폐기로〓이제 남은 길은 우주공간을 위협하는 괴물로 남지 않도록 안전하게 폐기하는 방법뿐이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11월 미르를 폐기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미르의 궤도를 서서히 낮춰 대기권에 충돌시켜 연소시키는 것이었다. 날은 2월26일로 정해졌다. 이후 폐기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다만 폐기일이 기술적인 문제로 늦춰져 23일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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