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권력중심 검찰로 이동…부패추적 검찰위상 강화

  • 입력 2000년 1월 10일 19시 48분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착수를 계기로 주요 서유럽국가들이 ‘검찰공화국’으로 바뀌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서유럽 각국 언론은 프랑스 스페인 등에 이어 독일에서도 정치지도자들의 비리와 부패 스캔들이 검찰에 의해 파헤쳐지면서 내각과 의회의 힘이 약화되고 행정부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검찰과 치안판사의 위상이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르몽드 등 프랑스 언론은 헬무트 콜 전총리가 불법 비자금 조성과 배임혐의로 수사대상이 됨으로써 깨끗한 공직사회를 자랑해오던 독일마저도 정치인의 스캔들에 휘말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미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에서는 사법당국이 명성높은 정치인의 정치인생을 마감시키거나 정치판 자체를 바꿔놓은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프랑스 경제재무장관은 대학생의료보험조합으로부터 뇌물성 법률 자문 수임료를 받은 혐의에 대한 검찰조사가 시작되자 직접 조사를 받기도 전에 사임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롤망 뒤마 헌법위원회 위원장도 91년 외무장관 당시 국영 석유회사 엘프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자 사임했다.

이탈리아의 정치평론가 세르지오 로마노는 정치인에 대한 사법당국의 수사가 강화되고 있는 이유를 “기존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68년 학생혁명 세대가 부상하고 민족국가의 약화현상이 나타나면서 공직자의 부패와 권력남용을 추적하는 검찰의 영향력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유럽의 19세기가 입법부의 시대, 20세기가 강력한 최고경영자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사법부의 시대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귈리아노 페라라 이탈리아 출신 유럽의회 의원은 “콜 전총리가 이끌던 독일 기민당(CDU)의 사례는 개혁을 외면하는 정당은 시련을 겪게 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고 말했다.

검찰의 위상강화는 각국의 사법제도 개혁에 힘입은 바 크다. 프랑스 사회당은 집권 직후인 97년 정치권력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을 위해 법무장관의 개별사건에 대한 수사지침 권한을 폐지하고 검찰인사시 법무장관을 견제하기 위한 사법평의회를 신설했다. 프랑스는 지난 해에는 하위직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법무장관에서 사법평의회로 이관하는 등의 2단계 사법개혁안을 마련했다.

<파리=김세원특파원> clai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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