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김우중회장 『자식같은 힐튼호텔 팔아야 되다니』

  • 입력 1999년 6월 18일 19시 28분


대우그룹의 서울힐튼호텔이 벨기에 호텔운영회사인 제너럴 메디터레니언 홀딩(GMH)에 2억1500만달러(약2500억원)에 팔린다.

대우는 18일 GMH측과 매각합의서를 체결하고 7월초 양수도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매각은 대우가 4월 발표한 대규모 자산매각 계획가운데 처음으로 성사된 것. 이를 계기로 나머지 외자유치협상도 진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83년 지어진 서울힐튼호텔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직후인 작년에도 30억원의 흑자를 내는 등 지금까지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알짜호텔. 특히 김우중(金宇中)대우회장의 부인인 정희자(鄭禧子)대우개발회장이 직접 경영을 맡아 애지중지 가꿔온 호텔이어서 이번 매각대상에 포함시키기까지 남모르는 아픔이 있었다.

서울힐튼호텔이 매각대상에 포함된 것은 전적으로 김회장의 결정. 김회장은 대우그룹이 재무구조개선 계획을 발표하던 4월19일 낮 갑자기 “가장 아끼는 것 부터 팔겠다”며 알짜기업인 서울힐튼호텔과 대우중공업 조선부문을 매각대상에 넣도록 지시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정회장은 “누구 호텔인데 맘대로 파느냐. 당장 매각대상에서 빼라”며 김회장 뜻에 정면으로 맞섰으나 김회장의 입장은 단호했다. 정회장은 이날 저녁 김회장이 주최하는 남산클럽의 부부동반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미장원까지 다녀왔지만 행사직전에 힐튼매각 계획이 발표되자 모임에 불참하고 호텔방에서 통곡했다고 한다.

정회장은 서울힐튼호텔에 진열된 미술품을 직접 보고 골랐으며 인테리어도 일일이 직접 손보는 등 호텔 구석구석에 애정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

정회장이 호텔사업에 전념하게 된 것은 장남인 김선재씨의 갑작스러운 사망때문. 90년 장남이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정회장은 선재미술관을 건립하고 호텔수익금으로 미술관사업에 몰두했다.

그러나 ‘여장부’ 정회장도 그룹의 운명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한때 하루하루 자금사정을 점검해야 할 만큼 긴급한 상황에 처하자 정회장은 결국 ‘분신’처럼 여기던 힐튼호텔을 내놓음으로써 대우 정상화를 위한 김회장의 노력에 동참했다.

대우측은 이같은 정회장의 심정을 헤아려 처음엔 힐튼호텔을 내국인에게 팔려고 애썼으나 인수자가 없어 끝내 외국기업에 넘기게 됐다는 것.

그동안 대우의 외국 손님을 주로 영접하며 대우그룹의 ‘사랑방’역할을 해온 서울힐튼호텔. 진통끝에 성사된 이번 매각을 계기로 대우그룹의 구조조정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영이기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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