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공습]유고-알바니아계 난민 고통의 나날

  • 입력 1999년 4월 11일 19시 42분


<<유고는 계속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폭격을 당하고, 유고측이 쫓아낸 알바니아계 주민은 가족과 헤어져 방황을 계속한다. 누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점점 구분이 어려워지고 있다. 똑같이 고통스러운 표정인 유고와 알바니아계 난민들의 현재 모습을 정리했다.>>

◆ 유고의 부활절

‘포화(砲火) 속에서 맞은 부활절.’

세르비아 정교(正敎) 부활절인 11일유고 수도 베오그라드곳곳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공습에도 아랑곳없이 부활절 기념행사와 공습에 항의하는 시위가 계속됐다.

부활절은 물론 전야에도 NATO군의 공습은 그칠 줄 몰랐다. 부활절을 수시간 앞둔 10일 밤 베오그라드와 코소보주 주도 프리슈티나 등에서는 공습경보가 울리고곧 이어수십차례의 폭발음이도시전체를뒤흔들었다.

그러나베오그라드시내대성당에서는 수백명의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부활절 자정미사가 예정대로 거행됐다. 흰색과 금색이 섞인전통 예복을입은 세르비아 정교 지도자는 미사에서 “NATO는 코소보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모든 제안을 거부했다”며 NATO의 공습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수천명의 베오그라드 시민들은 11일 날이 밝자 베오그라드 중심가에 있는 광장에 모여 NATO군의 공습을 항의하며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시위를 연 14일째 계속했다. 유명 가수들이 참여해 전쟁 속에서도 흥겨운 음악이 울려퍼졌다.

2천여명의 시민들은 10일 밤 공습경보가 울리자 사바강의 부란코 다리와 다뉴브강의 판체보 다리 위로 올라가 NATO군의 폭격을 막기 위해 스스로 ‘인간 방패’를 형성했다고 유고 탄유그 통신이 전했다.

〈김태윤기자〉terrence@donga.com

◆ 난민 이산고통

마케도니아 스코페 외곽의 스탄코비치 블라다 난민촌. 알바니아계 코소보 난민이 몰려들면서 난민촌 곳곳에 헤어진 가족을 찾는 기구한 사연들이 적힌 쪽지들이 급히 만든 벽보판에 다닥다닥 붙기 시작했다.

난민들의 사연은 마치 80년대 한국의 이산가족찾기 운동을 연상케 한다. 쪽지를 하나씩 들여다보다가 울음을 터뜨리며 뛰어가는 소녀, 혹시 가족이 못볼까봐 여러 장의 쪽지를 여기저기에 붙이는 중년 남자….

코소보 주도 프리슈티나에서 대학에 다니던 프라슈니쿠 에크렘(22)은 2주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뒤 소식이 끊긴 부모와 두 여동생을 애타게 찾고 있다. 그는 고향 사람들로부터 가족들도 피란을 떠났다는 소식만 들었을뿐 행방을 몰라 애를 태우고 있다.

가족 8명의 명단을 붙이던 이스메 크란스니쿠(48)는 “국경에서 한밤중에 난민촌으로 이동하던 중 가족과 헤어졌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난민들은 또 소식을 빨리 알 수 있는 전화를 이용하기 위해 외국기자를 만나면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 아우성이다. 대부분 마케도니아나 알바니아에 친척 한두명 정도는 살고 있어 이들에게 연락을 해두면 다른 가족의 행방을 찾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

프랑스의 자원봉사단체는 무료 전화 1대를 설치했다. 통화시간이 1인당 1분인데도 전화를 걸려는 난민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스코페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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