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재계 중도퇴진 『한파』…『경영실패 책임』사퇴 잇따라

  • 입력 1998년 3월 31일 19시 53분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 라일락은 피어나고….’

일본 경영인들은 요즘 이렇게 시작되는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를 실감한다. 불황이 길어지면서 경영부진의 책임을 지고 중도퇴진하는 경영인들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제조업체의 하나인 미쓰비시(三菱)전기의 기타오카 다카시(北岡隆)사장은 지난달 25일 경영실적 악화와 총회꾼 스캔들의 책임을 지고 도중하차했다.

지난해 총회꾼 사건에 회사가 연루됐을 때만 해도 “회사 재건이 나의 책무”라며 버텼으나 반도체경기 급락으로 97회계연도(97년4월∼98년3월)에 7백억엔의 적자를 기록하자 군소리 없이 보따리를 쌌다.

일본 최대 유산균업체로 프로야구 구단을 보유하고 있는 야쿠르트사에서도 투자실패에 따른 적자책임을 지고 구와하라 준(桑原潤)회장과 구마가이 나오키(熊谷直樹)부사장이 물러나기로 했다.

이 회사는 90년대 초 거품경기 붕괴에 따른 손실 회복을 위해 지난해 투기성이 높은 파생금융상품에 손을 댔다가 아시아 통화위기의 태풍에 1천억엔의 손실을 봤다.

‘일본의 날개’로 자부해온 일본항공(JAL)도 지난달 17일 최고경영진 퇴진과 대대적인 직원감축을 뼈대로 하는 경영개혁방안을 내놓았다. 곤도 아키라(近藤晃)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영적자에 대한 책임을 지고 6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야마지 스스무(山地進)회장과 함께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JAL은 항공시장 규제완화에 따른 과당경쟁과 해외호텔 및 리조트사업의 실패로 97회계연도에 9백70억엔의 적자를 냈다.

이들의 연쇄퇴진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깨끗이 지는 일본재계의 풍토를 보여준다는 평가도 있다.

어떻든 불경기의 태풍 앞에서 일본의 최고경영자들은 비탈에 서있다.

〈도쿄〓권순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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