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반도체,사활건 한판승부 예상

  • 입력 1998년 3월 4일 20시 20분


3·1절이었던 1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미국 반도체업계를 상대로 자못 ‘비장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미국의 반도체업계가 의회와 정부쪽에 한국이 반도체 가격 폭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등 악의적인 비난을 일삼고 있다며 이를 시정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국내 반도체 생산업체들의 모임인 협회 이름으로 공식 ‘성명서’가 발표된 것은 미국에 반도체를 수출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또 하나의 심상치 않은 ‘사건’. 미국 상무부는 4일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D램에 대해 고율의 덤핑 마진을 부과하기로 예비 판정했다.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에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선 것. 6월 최종 판결에서도 덤핑이 확정될 경우 수출 물량에 대해 현대전자는 12.64%, LG반도체는 7.61%의 관세 예치금을 내야 한다. 연례 재심에서 고율의 덤핑 판정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 국내 반도체업체들은 최근까지 3번 열린 재심에서 모두 무혐의 판정을 받았었다. D램 시장을 놓고 한국과 미국의 세력 다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세계 생산량의 30% 이상을 점유하며 D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업체들에 대해 미국측에서 전력 추격전을 선언하고 나선 것.

링에 올라선 미국측 선수는 마이크론 테크놀러지사. 미국내 유일한 메모리 반도체 생산업체인 이 회사는 지난해 16메가 D램을 매달 3천만개 이상 쏟아내는 등 저가격 물량 공세로 한국을 괴롭혀왔다. 마이크론사는 최근 전략을 수정, ‘고급화 전략’으로 한국과 맞서겠다고 벼르고 있다. 2·4분기(4∼6월) 엔 64메가D램을 대량 생산해 정면 대결을 벌이겠다는 것.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은 불황의 기나긴 터널이었다. PC 시장이 극히 부진한 데다 대만과 미국을 중심으로 D램이 과잉공급되면서 가격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제 터널의 끝이 보인다. 차세대 운영체제인 ‘윈도98’이 최근 선보인 데다 멀티미디어 기능이 뛰어난 펜티엄Ⅱ나 MMX급 고성능 대용량 PC가 제 궤도에 오르기 때문. 여기에다 대만업체의 투자축소와 일본 반도체업체의 사업철수 등으로 과잉현상은 해소될 것으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하반기에는 64메가D램을 중심으로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점친다. ‘전장’이 본격적으로 마련된다는 얘기. 삼성전자 현대전자 LG반도체 등 국내 빅3는 “64메가D램은 기술적으로 한국산이 한발 앞서 가장 우수하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양산 체계를 갖추고 시장만 형성되면 곧바로 치고 나가겠다며 칼을 갈고 있다.

〈홍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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