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은 누구인가]아랍맹주 야심 耳順의 독재자

입력 1998-02-01 20:12수정 2009-09-25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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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민족주의의 대변자’에서 ‘과대망상증 환자’에 이르기까지 평가의 양극단을 오가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군복을 즐겨 입고 콧수염이 인상적인 그는 이순(耳順)의 나이지만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으로 늘 세계인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후세인은 ‘투쟁하는 사람’‘대결하는 사람’이란 뜻의 이름에 걸맞게 파란 많은 삶을 살아왔다. 바그다드 북쪽 티크리트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잃어 영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지하단체에서 활동했던 숙부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카이로대 법학도였던 20세 때 급진 민족주의계열이자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한 바트당에 입당,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카림 카셈 총리 암살기도에 가담하는 등 첩보 테러 투옥으로 점철된 고단한 청년시절을 보냈다. 68년 바트당의 무혈쿠데타 성공으로 출세길이 열렸다. 혁명평의회 부의장과 의장을 거쳐 79년 하산 알바크르 대통령이 사망하자 드디어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의 나이 42세. 그는 아랍 맹주를 꿈꾸며 80년 이란과의 전쟁을 일으켜 8년간 전쟁을 치렀으며 포연이 채 가시기도 전인 90년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그는 처참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총리를 겸임하면서 권력의 샘인 집권 바트당과 혁명평의회 의회를 장악,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정적을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인권을 탄압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암살과 반역 기도, 사위 가족들의 망명과 장남의 거듭된 피격 등 어려움을 자초하기도 한다. 때문에 국내외에 적이 많아 10여개의 궁을 번갈아가며 매일 잠자리를 바꾸는 것으로 알려졌다. 걸프전 이후에도 다시 쿠웨이트 침공을 기도하고 지난해에는 북부의 쿠르드족 공격에 나서는 등 호전성을 버리지 않아 미국으로부터 여러차례 보복 공격을 당했다. 〈고진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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