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극복 지도자/루스벨트]담대한 리더십…미국 재건

  • 입력 1997년 12월 3일 19시 47분


「…도로변과 도랑둑에는 이주자들로 넘쳤다. …국도변의 빈민 캠프, 굶주림에 대한 공포, 저녁을 굶은 아이들, 이런 것들이 그들을 변화시켰다. 그들은 유랑민들이었다.…」. 존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1939)에서 30년대 미국을 휩쓴 대공황의 참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포천지는 32년 9월 기점, 실업자수를 3천4백만명으로 추산했다. 40%에서 50%에 육박하는 실업률이었다. 위대한 미국의 꿈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29년 10월24일 「검은 목요일」 이래 주식시장에서 휴지가 되어 사라져버린 자산은 3백억달러에 달했다. 한 해에 1천3백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다. 시대는 한 사람의 위대한 대통령을 예비하고 있었다. 33년 3월4일, 제32대 미국대통령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51)는 자신이 직접 쓴 취임사를 읽어내려갔다. 『이 위대한 나라는 어려움을 견뎌내 다시 소생하고 번성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이 나라는 지금 우리에게 행동, 그것도 지금 당장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F D R(루스벨트의 이니셜)의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담대한 리더십과 결단을 약속했다. 국민은 마침내 대공황과 전쟁을 치를 준비가 돼 있는 대통령을 발견했다. 미국민은 무능한 공화당 정권보다 탁월한 지도력을 보였던 민주당의 소아마비 후보 루스벨트를 택했다. 루스벨트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기간은 12년. 44년 그는 미헌정사상 마지막이 된 4선에 당선됐으나 이듬해 4월 초상화를 스케치하다 쓰러져 사망했다. 그는 대공황과 싸워 이겼고 2차대전 승리의 토대를 마련했다. 몸이 부자유스런 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그의 뉴 딜정책은 정부와 국민간의 관계, 그리고 거시경제 일반에 대한 기존의 자유주의적 사고를 바꾸어 놓았다. 미국은 물론 자유세계는 그를 통해 정부가 개인의 복지와 인권 향상을 위해 사적(私的) 영역에 개입할 수 있는 실질적 근거를 갖게 됐다. 뉴 딜정책은 또한 당시로서는 위기 극복의 지혜이자 방법론이기도 했다.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루스벨트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취임식이 끝난 그날 오후 그는 각료들을 백악관으로 소집했다. 상원의 인준 청문회는 생략됐다. 그 순간에도 은행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그는 모든 은행이 나흘간 휴업하도록 하는 긴급은행법안을 밤새워 만들도록 했다. 토요일의 취임식을 보고 일요일 하루를 쉰 미국민은 월요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은행들이 모조리 휴업중임을 보았다. 루스벨트의 보좌관 린들리의 말처럼 『검은 하늘에 번개치듯』 내린 결정이고 집행이었다. 은행을 휴업시킨 루스벨트는 그의 유명한 노변정담을 이용해 국민에게 호소했다. 그는 라디오를 통해 『은행은 안전합니다. 예금을 해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긴급은행법으로 대규모 인출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던 예측은 빗나갔다. 은행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예금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인출보다 예금이 많았다. 뉴욕에서는 예금이 인출을 1천만달러나 초과했다. 미국민은 기적을 일으켰다. 루스벨트는 이어 의회에 1백일간의 특별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이른바 뉴 딜정책의 핵심인 「1백일간의 입법」이 막을 올린 것. 3월부터 6월까지 이어지는 1백일간의 회기 중 그는 15개의 혁명적인 법안들을 의회에 보냈고 이를 통과시켰다. 뉴 딜의 새로운 입법에 따라 수많은 공공사업과 이를 관장할 기관들이 생겨났다. 테네시계곡의 치수, 발전사업을 담당하는 테네시계곡개발청(TVA), 국토보전과 치산 치수사업에 청년들과 예비역 군인들을 동원하는 민간 치산 치수사업단(CCC), 유휴농지 관리와 농민들의 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한 농업조정국(AAA), 국가산업회복청(NRA) 등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정부가 이처럼 경기회복과 빈민 구제에 직접 팔을 걷고 나섬으로써 침체와 좌절에 빠져 있던 미국사회와 경제는 꿈틀대기 시작했다. 물론 뉴 딜 출범 이후에도 불황의 구름이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었다. 36년에 상당한 회복세를 보였던 경기는 38년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럼에도 루스벨트와 그의 뉴 딜정책은 미국민에게 다시 일어설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행동, 지금 당장에 행동」을 요구한 루스벨트의 담대한 리더십과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워싱턴〓이재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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