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기자 미군유해발굴 취재기]北,美일행에 진수성찬 대접

  • 입력 1997년 10월 23일 20시 04분


미 제8기병대 3대대 병사들의 유해가 묻혀 있는 북한 운산 615고지에는 중공군이 호각과 피리를 불며 남하했던 50년11월 그 때처럼 47년이 지난 뒤에도 호각 소리가 요란하다. 미군 조사단의 유해발굴작업을 도와 땅을 파헤치고 있는 북한 병사 60명에게 작업을 지휘하는 소리다. 때로는 한국전 참전미군과 실종자가족 그리고 미 언론인들의 참관단 일행이 지정된 장소를 이탈할 때도 여지없이 호각소리가 들린다. 이는 미군 유해발굴단을 동행, 최근 20일동안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USA 투데이 바버라 슬레이빈기자의 참관기중 일부. USA투데이는 이 기사를 통해 북한은 대미관계 개선을 타진하기 위해 실종 미군의 유해발굴에 협력하고 있다고 22일 보도했다. 참관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한 북한군 대좌는 임시 가설된 식당에서 참새우요리를 곁들인 진수성찬으로 미국 일행을 환대했다. 같은 시간 함흥을 방문중인 토니 홀 미 하원의원 일행은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을 목격하고 있었다. 세계식량계획(WFP)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밥 한 공기를 그리워하고 있는 동안 군과 당 간부들은 이처럼 좋은 음식들을 손에 넣고 있다』고 말했다. 발굴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북한은 미군이 유해가 아니라 정보를 캐내려는 것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아 지하탐지레이더와 같은 첨단장비의 사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한때 M&M 초콜릿을 탄약으로 잘못 알고 압수하려 한 적도 있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내년도 유해발굴비용으로 2천2백만달러(2백억원)를 요구했다. 북한주민과 병사들에 대한 접근도 엄격히 통제했다. 미 방문단은 24시간 감시당했다. 당시 정황에 대한 증언을 청취하기 위해 북한의 참전군인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발굴작업은 북한병사들의 단조로운 삽질에만 의존, C레이션 캔과 철모 등은 쏟아져 나왔으나 유해는 7구밖에 찾지 못했다. 사료조사를 위해 방문한 「조국해방전쟁 승리」 박물관에는 포로로 붙잡힌 초췌한 미군병사들과 검게 그을린 미군 비행기들을 촬영한 사진들이 전시됐다. 이중 일부는 실종미군으로 판명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동행한 미 참전군인들은 전쟁의 참담한 기억을 지우려는 듯 눈을 감았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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