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교회-법조계, 「과거」속죄 나섰다

  • 입력 1997년 10월 6일 20시 24분


모리스 파퐁
모리스 파퐁
해마다 10월이면 프랑스는 부끄러움으로 침묵해왔다. 2차대전중 나치에 협력했던 비시정권이 7만6천여명의 유태인을 수용소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든 「반 유태인법」을 제정 선포한 날이 바로 3일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전통을 간직해온 지식인 사회의 자괴감과 죄책감은 더 컸다. 그러나 올가을 프랑스 법조계와 교회가 드디어 비굴한 침묵을 깨고 속죄와 역사 바로세우기에 팔을 걷고 나섰다. 『전쟁중 이곳에서 수용소로 떠난 「죽음의 열차」를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순간까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데 충실하지도 못했습니다』 2일 파리 북부의 트란시에 모인 프랑스 가톨릭 지도자들은 신과 역사 앞에 잘못을 고백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독일과 폴란드 교회가 과거 잘못을 인정할 때도 침묵으로 외면했던 그들이었다. 이어 프랑스 검찰은 모리스 파퐁을 8일 보르도 중죄법원에 불러 세운다. 비시정권에서 1천6백90명의 유태인을 수용소로 보내는데 적극 관여한 혐의다. 올해 87세의 파퐁은 42년부터 2년간 지롱드지방의 치안 부책임자를 지냈고 해방후 샤를 드골 대통령의 후원하에 파리 경찰국장과 예산장관을 역임한 인물. 그를 재판대에 세우기 위해 공소 시효가 없는 「반인류적 범죄」를 적용했다. 이번 재판은 81년 소송이 제기된 지 16년만의 일이다. 지난 16년간 파퐁의 유죄를 입증할 증인과 증거자료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치욕스러운 과거를 덮어두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이번 결정에 대해 희생자 대표인 조셉 시트러크는 『잘못을 인정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며 『뒤늦게나마 힘든 결정을 내린 교회와 법원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연말까지 계속될 이번 재판에는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파퐁 자신이 『공무원에게 법집행 과정에서 법의 도덕성을 판단해야 할 의무가 있느냐』고 반박하고 있으며 그를 희생양으로 삼아 과거를 잊으려 해선 안된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지식인들은 사법적 판단과 관계없이 「침묵의 책임을 사회가 떠안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승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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