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機 추락 참사현장]폭우속 軍트럭 동원 시신수습

  • 입력 1997년 9월 4일 20시 07분


베트남항공 여객기 추락현장은 4일 폭염과 폭우로 한층더 처참해졌다. 시체가 안치된 프놈펜 시내 칼메트병원 영안실에 모인 교민들은 처참한 모습에 말을 잊었다. ○…사고발생 하루가 지난 4일에도 현장에는 수십분씩 스콜(열대성 폭우)이 쏟아져 시신발굴을 방해. 캄보디아 당국은 3일밤 불도저로 임시차로를 닦았으나 겨우 1개만 만들어 많은 구급차들은 현장접근이 봉쇄됐다. 그나마 일반 앰뷸런스는 엄두도 내지 못해 캄보디아 정부군의 덤프트럭이 시신운반에 동원됐다. 4일 오전 5시부터 포클레인 1대를 투입해 시신발굴 등을 재개, 이날로 시신발굴을 끝냈다. 그러나 한국인 사망자 신원확인이 늦어져 교민과 유족들은 초조. ○…4일에도 현지교민 50여명이 시체발굴과 신원확인에 나섰으나 신원확인에 도움을 줄 만한 지갑과 손목시계 등이 도난당한 시체가 많아 확인에 애로. 교민들은 생김새와 옷차림으로 일단 한국인을 확인했으나 심하게 손상된 시체에 대해서는 속옷의 상표를 보며 확인. 또한 유족들의 확인을 돕기 위해 병원에 안치된 시신의 지문을 일일이 채취하고 사진을 찍었다. 교민들은 부인들까지 함께 나서 밤새워 영안실을 지키며 한국인 시신을 알코올로 닦고 부패방지를 위해 포르말린을 주입. ○…시신은 대부분 현장에서 7∼8㎞ 떨어진 칼메트병원으로 옮겨져 안치됐으나 사망 직후 화장(火葬)을 하는 현지관습 때문에 냉동시설이 갖춰진 영안실이 없어 어려움. 그러나 캄보디아 실력자 훈 센 제2총리가 3일밤 웅후옷 제1총리와 임만다 재해대책위원장 및 관계장관들을 대동하고 칼메트병원을 방문, 영안실이 형편없다는 한국교민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임시영안실 마련을 즉각 지시. 이에 따라 병원측은 스태프회의실 2개를 영안실로 개조, 에어컨 12대를 급히 설치. 훈 센 총리는 이날밤 9시반부터 4일 오전 2시까지 병원을 지키며 한국의 박경태(朴慶泰)대사와 사고처리 방안 등을 논의했으며 5일을 국가애도일로 지정. ○…서울의 유가족대책본부에 모여든 유가족들은 『시신에서 옷까지 벗겨가는데 시신확인이 되겠느냐』며 분통. 대책본부에는 주한 베트남 대사관 직원들이 대부분 나와 유족들의 베트남비자발급을 돕기도. 베트남항공 한국지점장 드응티엔 롱은 기자회견을 자청, 『10일 이내에 대부분의유해가 한국으로 들어올 수있도록 베트남정부가 캄보디아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다』고 소개. ○…주 캄보디아 정강현(鄭康鉉)참사관의 가족들은 당초 지난달 29일 캄보디아로 출발할 계획이었으나 이 계획을 바꾸는 바람에 참변을 당했다고 베트남항공사측이 발표. 정참사관의 부인 박정준씨가 지난주 전화로 『출발 일정을 5일정도 늦출 수 없겠느냐』고 부탁, 3일자 비행기를 예약했다는 것. 〈프놈펜〓특별취재반·정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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