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틀을 깨는 40개의 지도 이야기/앨러스테어 보네트 지음·김시경 옮김/320쪽·2만 원·M31
지도는 세상에 대한 인식을 함축하고, 만들어 내기도 한다. 튀르키예 남부, 신석기 시대 초기의 대규모 정착지였던 차탈회위크 유적의 마을 지도로 시작해 우리 은하가 속한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의 이미지까지 40개의 지도를 소재로 고정관념을 깨는 여러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2014∼2018년 남극을 방문한 선박의 항구 간 통행망을 그린 지도를 보면 남극이 더 이상 고립된 곳이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해마다 선박 약 200척이 남극 대륙을 방문한다. 그중 3분의 2는 관광용이다. 선박을 통해 유래한 홍합과 같은 외래종으로, 수천만 년 동안 독자적으로 진화한 남극의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책엔 참신한 지도들이 적지 않게 담겼다. 아프리카가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상상해 그린 ‘알케불란(인류의 어머니)’ 지도는 국경선이 불규칙하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를 대고 국경을 그려 만들어진 오늘날의 실제 지도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미국인의 가계 혈통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어디일까. 멕시코나 푸에르토리코 등 중남미 어느 곳일 것 같지만 지역별 최대 혈통 분포도에 따르면 사실은 독일이다.
지도엔 제작자의 특별한 의도가 반영되기도 한다. 중국과학원이 2013년 제작한 세로형 지도는 동아시아를 중심에 놓았다. 아메리카 대륙은 주변부로 밀려나 싹둑 잘려 있다. 상단의 북아메리카는 옆으로 누워 기어가는 모양새다. 오래된 중화사상이 되살아난 느낌을 준다.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세계지도는 아래위가 오늘날 지도와는 반대여서 남쪽이 위쪽에 그려졌다. 이슬람 지리학자들의 오랜 전통을 반영한 것이다.
영국 뉴캐슬대 지리학 교수인 저자는 이 밖에도 인간 대뇌피질 조각의 뉴런들이 복잡하게 뻗어 나간 모습, 나무와 균류의 네트워크, 지구의 지오이드(중력장 지도) 등 다양한 지도 이미지를 통해 인류뿐 아니라 자연과 우주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이미지 자체도 다채로워 보는 즐거움이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