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반으로 번지는 집단 망상…‘잘못된 믿음’ 벗어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21일 11시 42분


집단 망상 / 조 피에르 지음·엄성수 옮김 / 460쪽·2만4000원 / 21세기북스



#1. 조현병을 앓는 30대 프랭크 던바는 정부의 인공위성이 고의로 자신의 몸에 ‘에너지 빔’을 쏘고 있고, 그 결과 육체적 통증과 팔다리 경련이 생긴다고 확신한다.

#2. 소도시 상점 매니저인 세실리 퍼킨스는 인공위성 음모론 관련 유튜브 영상을 몇 시간씩 본다. 자신이 피해자라 믿는 건 아니지만,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며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고 지역구 의원에게 청원서도 보낸다.

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UCSF) 교수인 저자가 책에서 소개한 사례들이다. 프랭크는 전형적인 망상 사례다. 세실리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중요한 대목에서 차이가 있다. 세실리의 믿음은 프랭크처럼 주관적 체험(통증)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온라인에서 접한 정보에 근거한다. 저자는 이런 사례를 정신질환과 별도로, ‘망상 비슷한 믿음’이라는 범주로 구분한다.

‘집단 망상’은 세계적으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허위 정보와 음모론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이른바 ‘망상 비슷한 믿음’을 갖게 된 현실을 짚고 원인과 해법을 탐구한 책이다. 우선 저자는 음모론이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강조하며 이야기를 연다. 인지 편향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취약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경험적 규칙에 의존한다. 이런 ‘빠른 사고’는 신속한 결정을 돕지만 동시에 현실을 왜곡하는 함정도 낳는다. 충분한 정보를 검토하지 않은 채 즉각적인 인상으로 결론을 내리고, 이는 종종 잘못된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들어 달라진 건, 이러한 인지적 취약성이 사회적·구조적 요인과 결합해 초대형 위기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집단적 망상이 사회 전반으로 번지게 된 가장 큰 요인으로 ‘인터넷’을 지목한다. 이전만 해도 비상식적이고 특이한 믿음에 동의하는 사람을 동네에선 찾기 어려웠다. 있어도 오히려 조롱을 받곤 했다.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다. 인터넷 덕에 가장 비주류적인 믿음까지 공유할 동료를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비주류’라는 말 자체도 무의미해졌다.

그렇다면 집단 망상에 대한 ‘치료법’은 뭘까. 저자는 의사답게 몇 가지 해법도 제시한다. 첫 사례는 NPR 최고경영자였던 진보주의자 켄 스턴이다. 그는 2016년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복음주의 교회에 가고, 텍사스에서 멧돼지를 사냥하고, 보수 성향 티파티 모임에도 직접 참석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인들은 생각만큼 극단적으로 분열돼 있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이런 여행 체험을 담은 책 ‘공화당원 같은 나: 어떻게 진보의 거품에서 벗어나 우파를 사랑하게 됐는가’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합의점과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적었다. 여행을 마친 뒤 스턴은 민주당 지지를 철회하고 스스로 무당파를 선언했다.

두 번째 사례는 작가 존 하워드 그리핀이다. 그는 1959년 피부색을 흑인처럼 만들고, 인종 분리 정책이 시행 중이던 미 남부를 6주간 자동차로 여행했다. 그 과정에서 직접 경험한 인종차별을 ‘흑인이 된 나’에 기록했다. 실제로 ‘흑인으로 살아보는 경험’을 통해 흑인의 현실에 가능한 한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저자는 진정한 이해에 이르기 위해선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한참을 걸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많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오늘날, 직접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는 일은 우리와 이념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감정적 양극화를 누그러뜨리며, 극단적 갈등의 벼랑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 필수적인 처방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가는 책이다.
#집단망상#잘못된 믿음#조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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