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회장들 1년중 두달은 단식·고단백 식단으로 몸 리셋”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 동아일보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30분. 오늘 회장이 운동 가능한 시간이다. 온 몸을 사용하고 덤벨 복합 운동으로 근력을 다진다. 심폐기능과 몸 상태를 올리는 동작도 한다. 얼굴이 땀으로 촉촉해진 회장이 말한다. “30분이었지만 온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군.” 주어진 시간에 최적의 결과를 얻는 것. 전담 트레이너의 역할이다.

회장의 제주 출장. 전담 트레이너는 먼저 제주로 가 호텔 피트니스센터에 있는 러닝머신의 벨트 마찰 정도, 소리, 안정성을 확인한다. 약간의 소음이 있어 담당자에게 바로 조정을 요청한다. 피부와 닿는 기구에는 소독제를 뿌리거나 수건을 깔아놓는다. 한데 회장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 러닝머신들이 모두 작동하지 않았다. 플랜B 가동. 스트레칭 매트를 들고, 미리 봐 둔 인근 공원으로 갔다. 야외 운동이 끝난 후 회장이 말한다. “실내보다 더 좋은 것 같아.”

국내 3대 재벌 회장 가운데 2명의 전담 트레이너로 일한 조영기 씨(49)는 빠듯한 시간은 물론 각종 돌발 상황에도 가장 효과적으로 운동하는 방법을 찾았다. 한 회장은 2년, 또 다른 회장은 10년간 모셨다. 그가 이런 경험과 함께 운동법을 담은 책 ‘재벌 회장들의 몸을 설계한 남자’(힘찬북스)를 올해 9월 출간했다. 책은 나온 지 두 달 만에 1만 1000권이 판매되며 주목받았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재벌 회장들의 몸을 설계한 남자’를 쓴 조영기 트레이너.       조영기 작가 제공
‘재벌 회장들의 몸을 설계한 남자’를 쓴 조영기 트레이너. 조영기 작가 제공


조 작가와 오종운 힘찬북스 출판총괄책임(73)을 13일과 11일 각각 만났다. 조 작가는 책을 필명 ‘해준’으로 출간했다. 필명은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었다. 그는 당초 책을 쓸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교회에 다니는데요, 목사님이 ‘트레이너로서 재능이 남다르다. 나만 알기 아까우니 책을 써 보라’고 권하셨어요. 출판계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니 부정적인 반응 뿐이었어요. 운동법 책은 너무 많아서 스포츠 스타가 쓴 게 아니면 안 팔린다고요. 게다가 운동하는 사람은 글쓰기 능력이 떨어져 대필 작가가 필요하고, 본인이 직접 쓰면 편집자가 너무 고생한다며 말렸어요.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는 자기만 쓸 수 있는 내용을 고민하다 회장들을 모신 경험을 쓰기로 했다. 작가에게 글쓰기 수업도 일대일로 받았다. 일과가 끝나는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글을 썼고, 유일하게 쉬는 날인 일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꼬박 글쓰기에 매달렸다.

회장들은 물론 그 부인들의 운동 방법, 식단 등을 담은 에세이와 함께 운동법도 정리했다. 1년 2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올해 7월, 50개 출판사에 투고했다. 대형 출판사를 포함해 15개 출판사에서 바로 연락이 왔다. 그는 오 책임과 만난 후 힘찬북스를 선택했다.

“힘찬북스는 오 책임님이 오랜 시간 출판계에 몸 담으신 데다, 규모가 작기에 오 책임님과 직원분들이 한 번에 한 권씩만 만드신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재벌 회장들의 몸을 설계한 남자’ 책 표지.                 힘찬북스 제공
‘재벌 회장들의 몸을 설계한 남자’ 책 표지. 힘찬북스 제공


1981년부터 출판사에서 일한 오 책임은 ‘황제의 꿈’, ‘죽은 시인의 사회’ 등을 출간했다. 그는 조 작가의 이력과 원고 내용이 눈에 띄었다고 했다.

“재벌 회장이란 극소수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큰 출판사에서 내면 브랜드 파워가 있지만 다른 책들도 함께 만들기 때문에 신인 작가는 출판사 내에서 관심을 받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오롯이 이 책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다고 했고요.”

문장은 크게 손 볼 게 없었지만 회장이 누구인지 특정될 수 있는 내용을 비롯해 민감한 내용을 덜어내며 수위(?)를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다.

“작가님이 조심스러워하셔서 초고에서 뺀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책 한 권 분량이 충분히 될 정도예요. 뺀 내용만 모아 내년에 따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2002년부터 트레이너로 일한 조 작가가 회장들을 모시게 된 건 우연이었다. 모 그룹의 회장 전담 트레이너를 뽑는다는 공고를 본 선배가 권유해 호기심에 지원했다. 뜻밖에도 최종 합격했다. 물론 합격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다양한 자격증을 딴 데다 트레이너로 일하며 실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군대에선 스포츠 마사지병으로 근무했다. 서울특별시체육회에서 일하며 트레이닝을 비롯해 프로그램 개발, 업무 조율 등도 익혔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다니던 태권도장 옆에 있던 ‘육체미 도장’을 보고 단숨에 빠져들었다. 요즘의 헬스장에 해당하는 그 곳에서 바벨을 들어올리는 아저씨들의 단단한 몸과 ‘야생 멧돼지’ 같은 에너지에 압도당했다. 그 때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너무나 재미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럭비부에 들어갔어요. 럭비를 하려면 몸도 크고 힘도 세야 하기 때문에 근육을 키워야 했어요.”

조영기 트레이너는 “트레이닝이 진짜 재미있다. 이 일이 싫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조영기 작가 제공
조영기 트레이너는 “트레이닝이 진짜 재미있다. 이 일이 싫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조영기 작가 제공


책에는 회장들의 운동 방법을 비롯해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전담 트레이너의 긴장되는 순간도 실감나게 담겼다.

회장들은 자신의 건강이 회사와 직결된다는 걸 잘 알기에 운동을 치열하게 하고 식단 관리도 철저하게 했다. 운동과 식단은 물론 스트레스, 수면까지 고려해 종합적인 건강 관리를 하는 게 전담 트레이너의 역할이다.

급한 요청도 있다. “이번 주까지 3㎏ 빼야 해. 중요한 자리가 있어.” 그러면 곧바로 최적의 프로그램을 짜고 식단을 조율했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도 훈련받았다.

회장들은 일 년에 한 번 몸을 ‘리셋’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 달 동안 간헐적 단식, 저탄수화물 고단백 식이요법을 결합한 프로그램으로 몸을 비우고 정화시켰다.

종종 날아오는 돌발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 “이 생물학적 정화 과정이 정말 효과가 있는 거야?” 그는 노벨생리학상을 받은 ‘자가포식작용’ 연구에 대해 설명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타개하는 건 필수다. 비바람이 거세던 날, 벼락이 쳤다. 별장이 일시적으로 정전됐다. 다른 전자기기는 멀쩡했지만 단 한 대 있던 러닝머신만 타버렸다. 다음 날 아침 회장이 운동하려면 러닝머신이 꼭 필요했다. A/S센터에 연락하니 지방이라 며칠 걸린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살면서 가장 불쌍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 여기서 잘리면 갈 데도 없어요. 같은 애 아빠끼리 이러시면 안 되죠.” 천만다행으로 밤늦게 기술자가 와서 고쳐줬다.

회장 부인들의 다양한 요청에 맞춰 프로그램을 짜기도 했다. 원하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게 체중을 감량하거나, 강한 몸을 만들고 싶어 하고 마음의 건강을 찾고 싶어했다.

어느 날 운동하던 중 CNN 뉴스를 보던 부인이 “지금 저게 어떻게 된 상황이에요?”라고 물었다. 그는 이후 CNN을 챙겨봤다. 국내 현안도 파악하기 위해 뉴스를 꼼꼼하게 봤다.

회장들을 모시는 12년 간 그는 주 7일 근무에 사실상 24시간 대기 상태로 지냈다. 휴가도 없었다. 회장의 국내외 출장을 늘 수행했다. 그는 12년 간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했다고 말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면 힘들었지만 이를 해낸 후 너무나 뿌듯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엄격하고 진지하게 대하는 회장님들을 보며 깨달은 바도 많습니다. 운동 뿐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건강과 관련된 지식은 물론 시사 현안까지 두루 공부하며 시야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그는 현재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직원들의 건강을 관리한다. 헬스장 없이도 운동하는 프로그램을 스스로 개발해 이를 적용하고 있다. 저녁에는 서울 강남구에 있는 피트니스센터에서 퍼스널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새로 나오는 자격증도 계속 따고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며 공부하고 있다.

“이 일이 진짜 재밌어요. 천직이에요. 다채로운 분야에서 일하고 성격과 개성이 각각 다른 분들을 만나는 게 새롭고 흥미로워요. 아들이 원하면 트레이너가 되라고 권하고 싶어요. 대대로 트레이너 집안이 되길 꿈꿉니다.(웃음)”

■‘재벌 회장들의 몸을 설계한 남자’(힘찬북스·2025)는….

국내 3대 재벌 회장들 중 2명의 전담 트레이너를 지낸 조영기 씨(필명 해준)가 이들의 건강 관리 방법을 소개하고 구체적인 운동법과 식단 등을 정리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육체미 도장’에서 펼쳐진 풍경에 매료된 저자는 곧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각종 자격증을 따고 군대에서 스포츠 마사지병으로 근무했다. 서울특별시체육회에서 일했다. 그는 모 그룹 회장 전담 트레이너를 뽑는다는 공고를 본 선배의 권유로 지원했다. ‘경력 및 자격증 소지자’, ‘긴급 상황 대처 능력 필수’, ‘해외 출장 가능자’, ‘스포츠 마사지 우대’, ‘외모 준수’ 등 조건이 많았다. 서류 전형을 거쳐 실기 평가와 면접, 3차 면접을 본 후 최종 합격했다.

운동은 그날 회장의 컨디션에 맞춰 진행한다. 대외 발표가 있는 날은 상체와 코어 운동으로 자세를 바로 잡는다. 장시간 비행 후에는 하체 순환을 돕는 스트레칭을 집중적으로 한다.

회장이 출장을 가면 전날 출장지에 미리 가서 운동 기구를 확인하고 소독한다. 회장의 운동 시간은 하루 컨디션을 결정짓기에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식단 관리도 중요하다. 출장 때 머무는 호텔의 조리장을 만나 논의한다. “향신료가 강한 음식은 피하셔야 합니다. 닭가슴살은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해 주세요. 질감이 부드러워야 합니다.”

출장 중 외부 식사 자리가 많아도 식단 관리를 할 수 있게 도시락을 따로 준비해 건넨다.

잇따른 회의로 지친 회장이 테라피를 요청할 때도 있다. 이에 대비해 마사지 테이블과 온열 매트, 아로마 디퓨저는 미리 준비해 둔다.

회장의 일정이 빡빡하기에 주어진 시간이 30분이어도 최대의 효과를 내도록 운동을 진행해야 한다. 저자는 “피곤한 날에도 운동 시간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내 삶의 작은 선택들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고 말한다.

회장 부인과 자녀들의 운동을 맡기도 했다. 지루하지 않게 운동하는 법, 강한 몸을 만드는 법 등 각각 원하는 요구 사항에 맞춰 진행한 운동법과 식단도 소개한다.

운동과 암의 관계 등 돌발 질문에 답할 수 있게 건강에 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정치, 경제 등 시사 현안과 해외 이슈 등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뉴스도 챙겨본다.

저자는 “수천억 원의 계약을 앞두고 묵묵히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회장님을 보며 한 사람이 제국을 지탱하는 가장 본질적인 힘은 체력임을 깨달았다. 이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됐다. 내 제국은 나의 가정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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