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을 마친 이순재는 “신성일은 1960년대 한국 영화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해 막대한 기여를 한 사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성일을 다 기억한다”며 “너무 일찍 간 것 같다”며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이순재는 “신성일 작품은 많은 자료가 남아 있어 후학들에게 좋은 교본이 될 것”이라며 “영화 중흥에 큰 역할을 했다. 제일 바쁠 때는 동시에 20작품 이상을 했다. 정말 애를 많이 쓴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성일을) 본지는 오래 됐는데,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얼굴이 좋았다”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몇 번 보는 건데. 로맨스에 적합한 배우였는데, 건강했으면 말년까지 좋은 작품을 했을텐데 아쉽다”며 고인을 애도했다.
고인과 동시대를 함께 했던 이순재는 1960~1970년대 최고 인기 스타이자, 국민 배우였던 고인의 활발했던 활동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순재는 지난 3월 영화 ‘덕구’의 개봉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옛날 환경과 요즘의 환경에 대해 언급하면서 “나는 평생 (연기)해도 2층짜리 빌딩하나 없다”며 “아마 신성일이 지금 조건 같으면 10조는 벌었을 것이다. 연기한 만큼 받는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편 고인의 빈소에는 생전 고인과 함께 했던 동료, 선·후배 등 연예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순재를 비롯해 배우 최불암, 문성근, 선우용여, 김수미, 임하룡, 장미희 조인성 등도 빈소를 찾았다.
영화인장으로 치러지는 고인의 장례는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지상학 회장과 배우 안성기 씨가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았고, 배우 강수연, 거룡, 송강호, 이덕화, 장미희, 최민식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고인은 4일 오전 2시 30분 폐암으로 타계했다. 고인은 지난해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뒤 치료를 해왔으나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발인은 6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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