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칸&피플] 이창동 감독 “왜 ‘젊음’을 꺼냈냐고? 나이 드니 세상이 보이더라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5월 21일 06시 57분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받은 영화 ‘버닝’의 주역인 유아인, 전종서, 스티븐 연, 이창동 감독(왼쪽부터).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받은 영화 ‘버닝’의 주역인 유아인, 전종서, 스티븐 연, 이창동 감독(왼쪽부터).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 ‘버닝’, 비평가연맹상·발칸상 수상

유아인
“알이 깨져 새롭게 거듭나는 기분
내가 하는 일의 책임감이 커졌죠”

스티븐 연
“외로움 많이 느끼는 젊은 사람들
젊음을 이야기한 감독님 용감해”

전종서
“감독님은 날 가장 잘 이해하신 분
20대에게 주저하지 말라고 응원”


‘버닝’은 20일 폐막한 칸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최근 몇 년간 경쟁부문 초청장을 받은 한국영화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젊은이들의 현재를 그리는 이창동 감독은 미스터리 장르를 취하면서 숱한 질문을 던진다. 이에 참여한 배우들은 물론 관객에게도 고민과 궁금증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버닝’의 감독과 세 주연배우를 만났다. 할 이야기가 많은듯 쏟아지는 질문에 막힘없는 답변을 내놨다.

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 이창동, 왜 ‘젊음’이냐 묻는다면

‘버닝’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향해 냉혹한 질문을 던진다. 답을 찾는 일은 관객의 몫. 다만 이창동(64) 감독은 ‘젊음’을 꺼낸 이유를 두고 “나이가 들어 그런 게 아니겠느냐”며 웃음지었다.

“내가 젊다면 굳이 젊은이 얘기를 할 필요가 없겠지. 젊을 땐 그 젊음을 의식하지 못했지만 이제 보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 방향은 지금 젊은이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와 연결된다.”

지금껏 연출한 6편 가운데 5편을 칸 국제영화제에서 소개한 감독은 “영화는 전적으로 운으로 찍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상해진다. 바로 그게 영화의 속성”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운’이라지만 그의 영화는 ‘설계’의 연속이다. 가장 중요한 출발은 유아인이 연기한 종수를 작가 지망생으로 설정한 일이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 아직 작가가 되지 못한 그는 눈앞 세계에 질문한다. 이런 세상에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묻는다. 그건 바로 나의 운명이기도 하고, 영화하는 사람으로서의 비극이기도 하다.”

감독은 배우에게도, 함께한 촬영 및 음악 감독에게도 “주문한 게 없다”고 했다. 온전히 각자의 몫으로 맡겼다. 음악작업에서도 ‘귀가’ ‘공허’ 등 키워드만 던진 뒤 알아서 작업하길 바랐다. “통제되고 지배되는 게 아니라 모든 영화적인 요소에서 각각의 독립성을 살리고, 한데 어우러져 긴장을 만들려 했다”는 설명이다.

영화 ‘버닝’의 유아인.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영화 ‘버닝’의 유아인.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 유아인, 무의미한 순간 배제하고 살아가길

‘버닝’을 기점으로 유아인(32)은 확실히 달라졌다. 그 스스로의 체감이다. 유아인은 이를 “알이 깨져 새롭게 거듭나는 느낌”, “쌓인 때가 벗겨진 기분”이라 표현했다. 새삼 자신의 내면을 이토록 깊이 들여다본 경험도 처음이라고 했다.

‘버닝’ 속 유아인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속으론 분노가 들끓는, 이 시대 젊음을 상징한다. 칸 국제영화제를 찾은 해외 평단으로부터도 바로 이런 부분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버닝’은 ‘젊음은 이런 거야’, ‘이래야 해!’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감흥과 감정을 주면서 스스로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앞으로 나도 무의미한 순간을 배제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변화도 시작됐다. “연기하면서 세상과 호흡하는 벅찬 순간도 있었지만 이젠 소명의식이 짙어진다”는 그는 “내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 대중과의 만남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한 책임감이 커진다는 의미”라고 했다.

물론 세상을 향한 고민도 커진다.

“모두 같은 걸 원하고, 같은 걸 지향하는 자본 논리 안에 우리는 살고 있다. ‘버닝’을 통해 다시 느꼈다. 진짜 나는 없었구나. 나를 결정하는 게 나의 자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영화 ‘버닝’의 스티븐 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영화 ‘버닝’의 스티븐 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스티븐 연, 외로움은 나에겐 힘

스티븐 연(35)이 칸 국제영화제를 위해 프랑스 니스 공항에 도착한 날. 현장에는 150여명의 현지 팬들이 미리 모여 그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글로벌 인기가 엿보이는 장면이다.

작년 ‘옥자’, 그보다 앞서 ‘프랑스 영화처럼’에 이어 그에게 ‘버닝’은 3번째 한국영화다. 처음엔 자신이 없어 거절하려 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정체불명 인물 벤의 이야기를 접한 뒤 “충분히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나섰다.

“아마도 내가 이민자여서일 거다. ‘버닝’의 세 인물은 모두 외로움을 안고 있고, 그렇게 연결돼 있다. 외로움을 느끼고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다. 촬영을 위해 혼자 호텔에 머무는 시간도 내겐 외로움이었다. 그런 외로움이 나에겐 힘이다.”

‘버닝’ 작업은 그에게 세계도 맛보게 했다. “이창동 감독은 대단한 선생이고, 세상의 학생이다. 젊은이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용감하다. 결국 세상을 배우겠다는 거고, 그건 자유롭게 사는 거다.”

영화에서 스티븐 연은 ‘한국의 게츠비’로 표현된다. 무슨 일을 하는지 불분명하지만 엄청난 돈을 가진 남자. 그는 이창동 감독의 설계한 세계 그 이상으로 확고한 자신만의 해석과 철학을 꺼냈다.

“요즘 엄청난 정보가 쏟아진다. 그걸 받아들여야 하니까 세상이 점차 무서워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돈이 많은 사람은? 무섭지 않겠지. 돈이 해결해주니까. 그러니 다른 외로움을 느끼는 거다. ‘용감한 외로움’이랄까. 이 세상을 믿지 않고 규칙 없이 살아가는 영화 속 내 모습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한국 젊은 사람들은 외롭게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대목에선 그는 상당히 신중한 태도로 “아직 내가 배워야 할 게 많아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운을 뗐다.

“미국은 개인주의가 강하지만 요즘은 여러 정보가 섞이면서 연대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한국은 ‘정’의 정서가 강하다보니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인터넷 세상으로 인해 점차 서로 멀어지는 것도 같다.”

영화 ‘버닝’의 전종서.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영화 ‘버닝’의 전종서.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 전종서,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나

그간 자신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신인 전종서(24)는 칸에서 비로소 여유를 찾은듯 제법 편안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스스로를 “극단적으로 나뉜다”고 표현하면서도 “어느 것 하나로 나를 단정 지을 수 없다”고 했다.

“하루가 끝나고 침대에 누우면 생각이 너무 많아서 끝까지 파고들 때가 많다. 그러다가도 어떤 날은 종일 멍하게 보낸다. 극과 극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버닝’을 통해 삶의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어린 시절을 캐나다에서 보낸 그는 “극장에서 영화 3편을 몰아보는 일이 일상”일 만큼 영화에 빠져 산다. 연기자가 되려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갈증이 사라지지 않아” 포기했고, 그 뒤 도전한 첫 오디션이 바로 ‘버닝’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이해하는 분이 이창동 감독님이다. ‘버닝’은 나 같은, 20대를 향해 주저하지 말고 살라고 말하는 영화 같다.”

전종서가 그린 해미는 영화 속 두 남자의 욕망을 이끄는 모티프인 동시에 이들을 통틀어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가 노을을 바라보며 춤을 추는 장면은 하이라이트. 전종서는 “행복하다고 해서 그 순간이 영원하지 않고, 노을이 사라지면 곧 밤이 시작되는 것처럼, 영원한 건 없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 같다”고 해석했다. 전종서는 그렇게 한국영화의 매혹적인 배우가 탄생했음을, 이곳 칸에서 알렸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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