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책임감이 뭐야” 답없는 사늘한 미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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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영화 속 사이코패스 활개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이코패스처럼 극단적인 악역 캐릭터가 너무 자주 등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MBC 드라마 ‘화정’의 인조(김재원), SBS 드라마 ‘용팔이’의 한도준(조현재),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 영화 ‘암살’의 강인국(이경영). MBC-SBS·퍼스트룩-흥미진진 제공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이코패스처럼 극단적인 악역 캐릭터가 너무 자주 등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MBC 드라마 ‘화정’의 인조(김재원), SBS 드라마 ‘용팔이’의 한도준(조현재),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 영화 ‘암살’의 강인국(이경영). MBC-SBS·퍼스트룩-흥미진진 제공
‘요즘 사이코패스 없는 영화나 드라마는 없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서울 명동 한복판을 브레이크 한번 밟지 않고 고속 질주하는 재벌3세 조태오(영화 ‘베테랑’)나 그룹을 독차지하기 위해 아버지의 유언을 저버리고 동생 한여진을 죽이려 하는 한도준(SBS 드라마 ‘용팔이’).

영화나 드라마 속 악역인 이들의 공통점은 ‘사이코패스’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를 지칭하는 사이코패스는 실제로는 전체 인구의 1% 미만인 데다 사이코패스적 행동을 외부로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일상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와 영화 속에는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단골로 등장한다.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남궁기 교수(55)는 사이코패스를 “꼭 강력범죄뿐만 아니라 사소한 범죄일지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범법행위에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은 채 책임감 없이 저지르는 사람을 뜻한다”며 “두 감정이 결여된 사람을 사이코패스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방영 중인 주요 지상파 드라마와 상영 중인 주요 영화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등장했다.

영화 ‘암살’ 속 강인국은 ‘조국을 위해서’라고 포장한 채 실제로는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딸까지 죽인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나 가장의 책임감을 찾아볼 수 없다. SBS 드라마 ‘미세스 캅’에서도 연쇄살인범, 게임하듯 사람들을 죽이는 게임개발자에 이어 아들이 연예인 지망생을 실수로 죽이자 태연히 사건을 숨기려는 중견 기업 회장까지,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줄줄이 등장한다.

사극에서도 사이코패스 캐릭터는 빠지지 않는다. MBC 드라마 ‘화정’에 나오는 조선의 왕 인조는 고모인 정명공주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하려고 하거나 위아래 가리지 않고 막 대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인조 역을 맡은 배우 김재원도 6월 기자간담회에서 “대본을 보니 인조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처럼 느껴질 정도여서 욕먹을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궁 교수는 “영화나 드라마 속 악역은 극화되는 과정에서 갈등하는 내면이 생략되고 나쁜 행동만 부각되기에 죄책감이나 책임감 없는 ‘사이코패스’가 된다”고 말했다.

최근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늘어난 이유에 대해 대중문화평론가 하재근 씨는 “‘사이코패스’라는 용어가 잘 알려져 있고 강력범죄가 많아짐에 따라 웬만한 ‘악’은 더 이상 자극적이지 않다”며 “시청률 때문에 보다 강도 높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공분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이코패스 같은 극단적 악역을 자주 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드라마 등에서 사이코패스의 잔혹한 범죄 행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대한 지적도 뒤따른다. ‘미세스 캅’에선 연쇄살인범이 쫓기다가 남자아이를 칼로 찌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방송사고’라고 해도 좋을 만큼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황의갑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실제로는 극소수에 불과한 사이코패스가 마치 사회의 많은 부분처럼 부각되면 이를 나쁜 쪽으로 모방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죄책감#책임감#사이코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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