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자막방송에 성우들 출연 거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5월 15일 07시 05분


‘X파일’의 주역인 성우 이규화(왼쪽)와 서혜정.
‘X파일’의 주역인 성우 이규화(왼쪽)와 서혜정.
■ 1994년 5월 15일

1994년 오늘, MBC 외화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성우들이 더빙과 내레이션을 거부하고 나섰다. 한 달여 전인 4월16일부터 MBC가 ‘주말의 명화’와 외화 시리즈 ‘베벌리힐스 아이들’을 원어 그대로 방영하면서 우리말 번역을 자막으로 처리한 때문이었다.

MBC는 “국제화 개방화를 추구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시청자에게 외국문화를 더욱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하고 원작의 분위기를 충실히 느낄 수 있도록”(1994년 4월9일자 동아일보) ‘주말의 명화는’ 월 방영분 4∼5편 중 1편을, ‘베벌리힐스 아이들’은 전면 자막으로 우리말 번역을 내보냈다. 시청자 반응을 살펴 다른 외화 시리즈로도 확대할 방침임을 밝혔다. 또 1995년 3월 개국을 앞둔 케이블채널과 벌일 외화 경쟁에 대비하려는 목적도 내세웠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배경은 제작비 절감이라는 지적도 컸다.

이에 430여명의 성우가 회원으로 가입된 성우협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성우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처사”라면서 “저속한 외국문화가 여과 없이 시청자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TV의 대중화로 라디오 드라마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외화 더빙은 성우들의 주된 수입원 중 하나였던 탓이다. 성우들은 자막방송을 전면 중지할 것을 MBC에 촉구했다. 하지만 MBC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5월 들어서는 KBS마저 같은 움직임을 보이자 성우들은 외화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내레이션 등 음성이 들어가는 프로그램 출연을 전면 거부했다.

사실 외화의 우리말 자막 방송은 당시 EBS가 ‘다시 보는 명화’를 통해 일찌감치 시작한 터였다. 하지만 EBS는 교육방송이어서 ‘어학교육’이라는 취지를 인정받았지만 MBC는 일반방송이라는 점에서 적잖은 논란을 모았다. 또 TV외화는 가족 등 다양한 연령층이 시청하는 만큼 우리말 자막 방송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와 함께 유강진, 양지운, 배한성, 장유진, 송도영, 이정구 등 숱한 성우 스타들이 시청자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해외 톱스타의 얼굴만 봐도 이들 스타급 성우들의 낯익은 목소리를 바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들은 출연 거부 한 달여 만인 그해 6월20일 복귀했다. 그리고 현재 케이블채널 등을 제외하고 지상파 방송사의 대부분 외화 프로그램에서 성우들은 여전히 친근한 더빙 연기를 펼치고 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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