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잔혹액션 흥행의 비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26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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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앵커) 원빈 주연의 한국영화 '아저씨'가 개봉 후 3주 연속으로 주말 흥행 1위를 차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극적 표현과 배급망에 의존한 '거품 흥행'이라는 비판도 만만찮습니다.

(구가인 앵커) 마침 잔혹한 살해 장면 때문에 화제를 모은 또 다른 액션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바로 뒤이어 개봉했는데요. 잔혹 액션영화의 흥행 뒤에 가려진 이야기를 문화부 손택균 기자에게 들어보겠습니다.

(박 앵커) 손 기자, 두 영화 모두 관객 동원은 잘 되고 있는 편이죠?

(손 기자) 예.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4일 개봉한 '아저씨'는 22일까지 354만 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지난 주말 3일 동안의 관객 수는 65만 명으로 2위인 할리우드 영화 '라스트 에어벤더'를 2만여 명 차이로 제쳤습니다.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누적 관객 수가 500만 명을 무난히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하고 최민식 이병헌이 주연한 '악마를 보았다'는 지난 주말 28만명이 관람해 주말 흥행 3위에 올랐습니다.

(구 앵커) 한국영화 흥행 성적이 좋은 것은 환영할 일 아닌가요?

(손 기자) 영화의 흥행 기록으로 세상에 노출되고 또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관객 수 집계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얼마나 많은 극장에 그 영화가 걸렸나'를 보여주는 스크린 수 집계가 있습니다. 지난 주말 전국 영화관에서 '아저씨'를 상영한 스크린 수는 531개였습니다. 흥행 1위이면서 스크린 수도 1위였던 셈인데요. 이것은 444개로 2위를 차지한 '라스트 에어벤더'보다 87개가 많은 수입니다. '아저씨'가 국내 최대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 작품이라는 사실도 감안을 해야 합니다. 같은 CJ그룹 계열사인 영화관 체인 CGV의 상영 스케줄을 살펴보면 이 영화가 스크린 수 1위를 차지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번 토요일인 28일 서울 CGV 강변점은 오전 8시 50분부터 밤 12시 40분까지 '아저씨'를 2개 상영관에서 10회 상영합니다. '악마를 보았다'와 할리우드영화 '인셉션'은 6회, 2위인 '라스트 에어벤더'는 이 극장 상영 리스트에 아예 없습니다.

(박 앵커) 결국 영화관이 같은 그룹 계열사가 배급하는 영화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군요.

(손 기자) 그렇습니다. 24일 오후 찾아간 서울 강남 CGV 압구정점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7회의 상영 스케줄이 잡혀 있는 반면 '악마를 보았다'는 2회, '인셉션'은 4회가 잡혀 있었습니다. 게다가 '악마를 보았다'의 상영 시간은 점심시간과 밤 11시뿐이었습니다. 경쟁사인 쇼박스가 배급하는 영화의 상영시간 배치를 일부러 불리하게 한다는 의혹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구 앵커) 하지만 영화라는 것이 원래 상업적 콘텐츠인 것을 감안하면, 시장 경쟁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손 기자) 맞습니다. 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그런 유리한 조건을 갖춰 놓고 벌인 게임에서 얻은 성적을 역으로 영화 품질을 홍보의 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저씨를 재미없는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영화를 즐겨 보는 관객이라면 '아저씨'를 관람하고 나서 몇몇 외국 영화를 떠올렸을 겁니다. 많이 언급되는 것은 1994년 국내 개봉한 장 르노 주연의 '레옹'과 2008년 선보인 리암 니슨 주연의 '테이큰'입니다. 이 세 영화는 모두 '전투 능력이 탁월한 남자 주인공이 위기에 처한 어린 소녀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악당을 현란한 전투를 거치며 무찌른다'는 기본 줄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테이큰에서는 그 관계가 아버지와 딸이었고, 레옹은 아저씨와 비슷하게 그저 옆집에 사는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잔혹한 칼싸움 장면, 어린이 인신매매 등 우리 사회 범죄에서 가져온 소재를 들어내면 '아저씨'의 이야기 뼈대는 앙상해 보입니다.

(박 앵커) 한국영화가 이렇게 선혈 낭자한 잔혹 액션영화에 몰두하는 이유가 뭘까요.

(손 기자) 일단 2008년 '추격자'의 흥행 성공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실제 벌어졌던 연쇄살인사건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그려내면서 비슷한 구성의 범죄영화 시나리오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죠. 하지만 누군가 이미 선보였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의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다 보면 결국 잔혹한 장면, 화려한 싸움 기술 등 말초적인 표현에서 차별화의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악마를 보았다' 역시 5년 전 '친절한 금자 씨'가 충분히 보여준 주제를 잔혹한 표현의 강도만 높여 반복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눈앞의 흥행 성공이 한국영화의 먼 앞길을 볼 때 장애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입니다.

(박 앵커) 네, 손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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