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김세원] 되돌아온 ‘싱글’의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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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5일 15시 00분


코멘트
● 앨범은 언제부터 우리 주위에 가득 찼던 걸까?
● 뉴미디어 시대의 도래와 각광받는 싱글 앨범
● 촌스러워진 앨범, 패셔너블한 싱글


한동안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던 LP와 CD가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한동안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던 LP와 CD가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요즘은 들을만한 앨범이 없어."

마치 "요즘 애들 버르장머리 없다"는 표현만큼이나 오래된 얘기다.

그런데 요즘은 글자 그대로 진짜 들을 만한 앨범이 없게 돼버렸다. 한국 가요시장에서는 그 '앨범'이란 것이 아예 나오는 경우가 드물고, 주로 '미니앨범'이나 '디지털 싱글'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누구나가 갖고 있는 향기로운 음악 '앨범'의 추억

필자 어릴 적엔 어느 집을 놀러가도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단발머리' 앨범이 거실의 선반에 꽂혀 있었다. 참으로 풍성했던 1980년대 팝과 1990년대 가요 속에서 많은 노래들을 들으며 삶을 겪고 추억을 쌓아 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음악과 관련된 추억들 중 상당수는 처음 샀던 LP판이나 좋아하는 친구에게 주었던 테이프, 그리고 최근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CD처럼 저장매체들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필자가 처음 샀던 LP판은 마돈나의 'Like a Prayer' 앨범이었다. 'Like a Virgin'보다 뒤에 나온 다른 앨범이다. 고등학생이 되어 용돈이 올라 이전에 테이프로만 사던 신작을 LP로 업그레이드하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LP전성시대인 80년대의 대표적인 가수 마돈나. 30년이 지난 지금은 앨범판매보다 공연이나 부가 사업등의 음반 외적인 수입이 더 중요해졌다.
LP전성시대인 80년대의 대표적인 가수 마돈나. 30년이 지난 지금은 앨범판매보다 공연이나 부가 사업등의 음반 외적인 수입이 더 중요해졌다.

당시 극장에 뱀을 푼 유명한 사건이 있다. 그 유명한 '우루과이 라운드' 한미 무역협정으로 미국 영화가 한국에 직접 배급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바로 그 첫 직배영화 '위험한 정사'를 상영하는 영화관에다가 한국영화의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항의표시로 국내 영화감독이 뱀을 풀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중음악계의 '라이선스 음반' 체계, 즉 출판권이 외국회사에 있는 음악은 반드시 한국의 수입 배급사를 끼고서만 출시할 수 있었던 제도가 무너졌다. 그리고 외국의 대형회사가 직접 배급한 첫 앨범이 마돈나의 'Like a Prayer'이었다. 흑인 소울풍을 가미한 마돈나의 음악적 변신이 아름다웠다는 얘기는 첫 직배와 그에 따른 가격인상에 묻혀버렸다.

당시엔 심각한 사회 문제였는데 지금은 그저 나 개인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사람들마다 이런 저런 앨범에 대한 추억들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사진으로 방을 도배하고 그의 모든 앨범을 소장하는 일은 우리 세대나 그 윗세대들에겐 흔한 일이었고 그땐 무엇보다 '전축'이 필수 가전제품이었던 시절이었다.

'전축'이 있으면 그 아래에 수납선반이 있고 그 곳엔 LP판을 넣고 전축 옆 시렁에는 예쁜 테이프꽂이에 테이프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한 때 테이프의 판매량이 LP와 CD보다 많았던 시기도 상당 기간 계속됐다.

전축이 일반 가정에서 사라지고 TV나 5.1 A/V 시스템으로 대체된 지금, 대부분의 학생들은 스테레오 카세트는 없이 MP3플레이어와 휴대폰, 그리고 컴퓨터로 음악을 듣는다. 그게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그 두드러진 차이점은 '음악만을' 위한 장비를 이제 일반 국민들은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 비틀즈와 핑크플로이드가 완성한 '앨범 중심' 대중예술


비틀즈-1960년대 이후 정교화된 컨셉 앨범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LP의 시대를 가속화 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비틀즈-1960년대 이후 정교화된 컨셉 앨범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LP의 시대를 가속화 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갑작스런 질문이지만 애초부터 앨범이라는 단위가 존재했던 것일까?

이런 질문은 저장 매체와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 LP 이전에는 SP, EP라는, 대중가요 한두 곡 정도의 짧은 분량밖에 담지 못하는 매체로 음악이 유통되고 있었다. 이른바 원조 싱글의 시대다.

음악 산업의 초기에는 음악이 싱글 단위로 SP를 통해서 유통됐고 대중들은 불편해하기는 커녕 SP 레코드를 사서 즐겁게 최신곡을 감상했다. 그러나 1949년 이후 미국에서 LP가 상용화되면서 교향곡을 한 판에 담을 수 있게 됐다. LP라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자 클래식 음반 시장의 경우 제작자와 소비자 모두 LP로 넘어 갔다. (SP로 '엘리제를 위하여'나 '로망스' 같은 소품들만 듣던 불쌍한 클래식 팬들을 생각해 보라. 새 세상이 열린 것이다!)

한편 대중음악 제작자들은 이 신기술을 이용해 1+1 대용량세제 팔듯 더 양이 많고 비싼 물건, 즉 LP 형태로 음악을 팔아먹기 위해 고심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한 두곡이면 충분한 대중들에게 LP를 팔기는 쉽지 않았다. LP를 어떻게 채울까 하는 고민은 단순한 히트 싱글곡의 모음 정도를 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대중음악이 보다 발전하고 진화하는 계기가 됐다.

바로 우디 거스리, 레이찰스, 밥 딜런, 비틀즈 등 대중음악의 거장들에 의해 점점 정교화된 '컨셉트 앨범'이라는 제작 스타일이다. 이는 LP 앨범을 사고 싶게 만드는 새로운 방식이 됐다.

더 놀라운 점은 최신곡을 싱글 레코드판으로 구입하는 시장이 1990년까지도 성황리에 존속했다는 사실이다. 그 이후에도 싱글 CD의 형태로 싱글곡을 구매하는 대중의 기호는 계속 이어져 왔다. 영미와 유럽 뿐 아니라 이웃 일본에서도 싱글 시장은 굉장히 컸다.

그래서 더더욱 LP나 CD 형태로 "앨범을 채운다"는 것이 단순한 노래의 나열이 아니라 어떤 통일된 주제나 정조를 가지고 작곡부터 연주, 후반작업까지 해 나가는 독자적인 방식이 되었던 것이다.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이나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 같은 앨범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대중음악 팬들은 유행가 한 곡을 듣는 게 아니라 예술적으로 통일된 앨범 단위로 음악을 감상하는 시대를 오랫동안 누리게 됐다.

▶ 한국에선 레코드 회사의 수익성 위해 싱글 포기?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싱글 단위의 판매가 성행하지 않았다. 아마도 레코드 회사와 제작자의 편의성과 수익성 증대를 위해 대중들이 희생한 측면이 컸다고 생각된다. 한국 가요계에서는 일부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음악인들이 컨셉트 앨범들을 상당수 발표했다. 물론 잡탕음반도 상당부분 차지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한국 음악 산업은 앨범이 아닌 그 어떤 형태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서 LP와 CD 시대를 지내왔다.

그리고 인터넷과 MP3 같은 새로운 형태의 컴퓨터 기반 기술과 컴퓨터 파일 기반의 저장매체가 대중화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불법 음악파일 복제와 유통, 저작권 침해 등등 어두운 면들이 강조됐지만, 그런 것도 잠시일 뿐 이 새로운 방식은 급속하게 그리고 합법적으로 기존의 방식들을 대체해 나가기 시작했다.

도토리로 사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걸어 놓은 음악, 자기가 듣는 것도 아닌데 전화 거는 사람을 위해 설정해 놓은 통화 연결음, MP3폰에 다운받은 MP3파일까지 새로운 통신사 주도의 사업 방식이 급속도로 퍼져갔다.

▶ 디지털 시대가 되살려낸 싱글의 시대

가수 서태지가 온라인에 싱글앨범을 발매한 2009년 3월10일 팬클럽들 회원들이 모여 기뻐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가수 서태지가 온라인에 싱글앨범을 발매한 2009년 3월10일 팬클럽들 회원들이 모여 기뻐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정말 놀랍게도 2004년에 이미 통신사 주도의 온라인 음악 시장이 기존의 음반 시장을 넘어섰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회원제 음악 서비스나 다운로드 서비스도 없이 벨소리와 통화 연결음 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판매액의 절반을 떼어 간다는 통신사를 욕하면서 음원을 주네 마네 옥신각신하다가 몇 년, 불법 복제 유통하는 누리꾼을 고발하다가 또 몇 년. 뒤늦게 쪼그라든 물리적인 음악시장을 깨달은 제작 주체들은 변화를 모색해야 했다.

사실 불법 복제는 옛날부터 불법복제 비디오, 해적음반 등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고 언제 어디에나 지하경제는 있는 법이다. 본질은 온라인 플러스 오프라인 합계 음악시장 전체는 축소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을 뿐이다.

제작자 측에서는 비로소 팔리지도 않을 앨범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낭비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앨범을 하나 채우려면 최소 열곡은 되는데 작곡가, 작사가, 편곡가에게 곡비를 줘야 하고 세션 연주자들에게 세션비를 주고 또 모든 노래의 녹음 시간만큼 녹음실을 대여해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앨범 단위가 거추장스럽게 되었다. 집에 플레이어도 없는데 CD는 번거롭고, 또 할 것, 볼 것 많은데 앨범 듣고 있을 여유가 없다. 그리고 음악시장은 언제나 신상품을 파는 게 (마치 패션 산업처럼) 매출의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그 중에서도 신곡을 구매하는 사람은 새로운 걸 남들보다 먼저 갖고 싶고 먼저 듣고 싶은 거다.

그러니까 앨범으로 나오면 이미 늦은 거다. 갓 구운 음악을 바로 전송받으면 더 멋진, 패셔너블한 시대가 된 것이다.

▶ 이미 공룡처럼 멸종을 기다리는 CD에 대한 아쉬움…

디지털 시대 MP3로 듣는 싱글 앨범이 보다 더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 음악의 소비방법 역시 기술의 진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디지털 시대 MP3로 듣는 싱글 앨범이 보다 더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 음악의 소비방법 역시 기술의 진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금도 물리적인 음악 매체는 팔리고 있다. 하지만 그 양상은 과거와 상당히 다른데 국내 유일의 대형 음반매장의 2009년도 연간 가요 판매순위 1~10위 사이에 미니 앨범이 무려 7개가 들어 있다. 싱글 앨범에 대한 전통이 없는 국내에서 한편으로는 새롭고 신기한 일이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모든 변화의 결과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변화일지 모른다.

물리적인 매체로 음악을 듣게 해 주는 사업 방식 자체가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싱글의 다운로드 판매로 음악 산업의 방식이 바뀌어 가고 있어서 CD 발매도 몇 년 내에 없어질 거라는 얘기도 많다.

운석은 이미 떨어졌다.

대중음악이 싱글에서 시작해 앨범으로 풍성해졌다가 다시 싱글로 다이어트를 한 지금, 나를 비
롯한 대중음악 애호가들은 공룡처럼 목을 쭉 빼고 우두커니 뒤를 돌아다보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앨범시절이 좋았던 거다.

김세원 / K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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