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닌자 어쌔신’과 ‘청연’의 이중잣대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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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닌자 범벅된 비
할리우드 주연에 박수

항공촬영 열연 장진영
‘친일미화’ 비난에 묻혀

비가 주연한 할리우드 액션영화 ‘닌자 어쌔신’은 동양에 대해 미국 관객들이 품고 있는 판타지를 콕 집어 공략하려는 영화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해야 한다. 혈관에 흐르는 피조차 인간의 약점이다” “보이는 것보단 감각을 믿어라” 같은 대사들은 진부하고 유치하지만 합리성을 바탕으로 문명을 이끌어온 서양인의 시각에선 ‘우리에겐 없지만 동양엔 있으리라’고 믿고 싶은 그 무엇에 해당하는 항목들인 것이다. 총을 칼로 압도하고 목숨보다 약속을 중시하는 영화 속 닌자의 모습도 서양인들의 허기를 채워줄 매력적인 소재가 될 수 있다.

‘닌자 어쌔신’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비는 전작 ‘스피드 레이서’와 달리 과장된 표정을 자제하면서도 연기의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다만 사지가 댕강 잘려나가는 피 칠갑 액션장면에서 “후앗! 하앗!” 하고 괴성을 남발하는 것은 너무 ‘서양적’이었다. ‘등 뒤에 서 있어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차갑고 유령 같은 존재가 바로 닌자’라는 이 영화의 전제와 모순된 설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놀란 점은 따로 있었다. 비가 닌자 역할을 맡은 것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언론과 인터넷의 반응이었다. 김윤진이 스티븐 스필버그가 2005년 제작한 영화 ‘게이샤의 추억’의 게이샤 역 출연제의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애국자’로 칭송되던 기억이 생생한데, 비는 일본 닌자로 나오는데도 ‘최대 영화시장 미국에 주연배우로 진출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수년 사이 한국인의 문화적 인식이 성숙해져서 그런 걸까. ‘케케묵은 민족감정을 극복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유감스럽게도 그건 아닌 듯하다. 지난달 일본영화 ‘고에몽’에 일본 무사로 출연한 격투기 선수 최홍만은 인터넷에서 ‘싸움도 못하는 주제에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욕설을 들었다. 물론 최홍만은 일본영화에, 그것도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지키는 호위무사로 출연한 반면 비는 할리우드가 세계시장을 겨냥해 만든 영화에 출연했고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쓴다. 비가 연기하는 인물도 ‘닌자로 길러졌지만 닌자 집단의 비인간성을 깨닫고 반기를 드는’ 착한 인물이다.

그러나 여전히 궁금하다. 이 영화는 제목부터가 대놓고 ‘닌자’란 단어를 쓰고 있으며, 어쨌거나 닌자로 출연한 비는 꽁지머리를 한 채 나무젓가락으로 우동을 먹지 않는가.

“그럼 네 생각은 뭐냐”고 묻는다면, 이젠 일본 알레르기를 극복해야 할 시점이라고 할 것이다. 영화에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잣대로 들이대며 마녀사냥을 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말할 것이다.

이 순간, 9월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여배우 장진영이 나는 그립다. 그가 살아생전 가장 위대한 도전을 감행한 영화는 조선 최초의 민간여류 비행사를 소재로 한 영화 ‘청연’(2005년)이었다. 10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청연은 한국영화의 기술적 성취를 보여준 항공촬영과 폭발력을 응축한 장진영의 연기가 돋보이는 수작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개봉도 하기 전 “친일경력이 의심되는 인물의 삶을 미화한다”는 비난에 휩쓸렸고, 결국 불매운동을 이기지 못해 개봉 첫 주부터 흥행에 참패했다. 당시 장진영은 “내가 직접 나서서 (관객에게)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지만 ‘한번 찍히면 영원히 죽는다’로 요약되는 인터넷 광풍에 희생됐다.

나는 청연을 둘러싸고 당시 일어난 비난에 결코 찬성하진 않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생각은 자유고, 비판도 자유니까. 하지만 나는 그 잣대만은 언제나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진영은 훌륭한 배우였지만 비와 달리 ‘월드스타’엔 끼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는 죽은 장진영이 더 그립고 불쌍하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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