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안현진]미국 시트콤 ‘쿠거 타운’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18일 18시 53분


미국 시트콤 ‘쿠거 타운’
미국 시트콤 ‘쿠거 타운’
'쿠거'(Cougar)란 미국에서 보통 8살 이상 차이 나는 어린 남자와 데이트하는 40대 여성을 일컫는 속어다. 플로리다의 가상 도시 '쿠거 타운'을 무대로 펼쳐지는 ABC의 새 시트콤 '쿠거 타운'은, 장면이 바로 연상되는 대담한 제목으로 방영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야릇한 표정의 코트니 콕스가 '쥴스 코브'라는 이름의 부동산 중개인인양 게시한 티저 광고 역시 호감을 모았고, 첫 회 시청자수가 1128만에 이르는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돌아온 싱글 쥴스(코트니 콕스)는 새내기 쿠거다. 저녁이면 와인 한잔 홀짝이며 낱말 맞추기를 하는 게 전부였던 쥴스가 데이트 시장에 뛰어들어 동네망신 다 시키고 다니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봤는데 팔 아래 주렁주렁 매달린 저고리살이며, 처진 가슴, 튀어나온 똥배를 보고 갑자기 우울해졌다. "내 꽃다운 날들은 언제 다 가버렸나?" 사연은 이렇다. 대학교 때 만난 남편과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21살에 엄마가 됐고, 졸업도 포기하고 육아에 전념하다 백수 남편을 대신해 부동산 중개인이 되어 지금까지 가장으로 살아온 것. 그리고 십수년이 지나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고 남편과 이혼하자 흘려보낸 20대를 즐겨보겠다고 밤이면 밤마다 불나방되어 클럽으로 가는 것이다.

시트콤의 공식을 따라 한정된 공간, 제한된 등장인물, 변화무쌍한 상황을 연출하는 '쿠거 타운'은 쥴스의 가족, 이웃사촌, 직장 동료로 그 소우주를 만들었다.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는 쥴스의 회춘열정을 부채질하는 로리는 쥴스의 부하직원이고, 반대쪽에서 찬물 좍좍 끼얹는 엘리는 오랜 친구이자 이웃사촌이다. 시도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전 남편 바비도 밉지만은 않은 캐릭터. 또 지금은 앙숙이지만 시리즈가 진행되면 애증관계를 형성하지 않을까 의혹이 가는 이웃 그레이슨도 있다. 매끈하게 잘생긴 그레이슨은 쥴스와 비슷한 시기에 이혼한 반품남이면서, 매일 밤 어린 여자들을 집으로 끌어들여 쥴스의 비위를 뒤집어 놓는다.

"'쿠거 타운'은 엉망진창"이라는 '할리우드 리포터'의 표현처럼, 정말 그 마을에 제대로 된 어른은 한 사람도 없다. 하지만 쿠거 타운에도 중심은 있다. 혹평을 퍼부은 '할리우드 리포터'도 "어둠 속 한줄기 빛"이라고 소개한, 쥴스의 아들 트래비스가 바로 그 중심이다. 철 없는 부모 아래 자란 아이들이 으레 어른스럽듯, 트래비스는 속이 꽉찬 고등학생이다. 이혼한지 얼마나 됐다고 아들 또래의 젊은 남자를 불러들이는 엄마가 창피하면서도 안쓰러워 화도 못낸다. 트래비스는 "넌 왜 엄마 농담에 안웃는거야?" 쥴스의 우문에 "슬프니까요"라고 대답하는 아들이다.

남사스럽게 미쳐 돌아가는 마을 '쿠거 타운'의 창조자는 메디컬 코미디 '스크럽스'로 이름을 알린 빌 로렌스다. NBC의 장수 시트콤 '프렌즈'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코트니 콕스는, 원톱 출연했던 '더트'가 별 소득 없이 막을 내리자 시트콤으로의 복귀를 원했고, 마침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던 로렌스와 만나 '쿠거 타운'에 승선했다. 하지만 그 둘의 조합에도 '쿠거 타운'은 고전 중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코트니 콕스가 역겹게 웃기다"는 'LA 타임즈'의 평이 호평에 속할 정도. 쥴스의 캐릭터에도 문제가 있다. 청춘의 한 조각을 잡아보려는 처지가 안타까워서일까, 과장된 몸짓이며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슬프다. 훌륭한 코미디일수록 희로애락을 절묘하게 건드려 심금을 울린다지만 그보다 먼저 웃겨야 하는 게 아닐까? 폭소는 커녕 실소만 자아내니 이 시리즈를 계속 기대해도 될지 고민스럽다. 첫술이야 연막작전으로 성공했는지 몰라도 이제부터는 진짜 이야기를 가지고 승부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섰으니 말이다.

그런데 허술한 시즌 초반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장면이 있다. 아직은 어둑한 새벽에 쥴스의 집에 하나둘씩 모여든 이웃들. 비슷한 연배인 그들은 각자의 20대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닝커피를 앞에 놓고 주거니 받거니 추억을 이야기한다. 그러다 쥴스의 차례가 됐는데 할말이 없어 곤란해 하는 장면인데, 괜히 뭉클해 쥴스를 지지하고 싶어진다. 사실 '쿠거 타운'은 젊은 남자와 화끈한 밤을 보내는 아줌마들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쥴스가 언제까지나 젊은 남자들과 노닥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20대가 뒤늦게 메워지는 그런 시간도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앞으로 전개될 쥴스의 상황과 선택을 지지할 시청자는 얼마나 될까? '쿠거 타운'이라는 그럴싸한 간판 아래 시청자가 기대했던 그 무엇은 채워질까? 뜨거운 밤과 인생무상을 동시에 논하려는 '쿠거 타운'은 섹스 코미디 혹은 섹시한 코미디가 얼마나 어려운 장르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야 겨우 미덕을 찾을 만 하다. 그러나 일단은 지금 드러난 바닥보다 보여줄 것이 더 많기를, 저 장면 하나를 믿고 기다려 보련다.

안현진 美 UCLA 동영상 아카이브 석사 과정 joey04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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