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해외보급 1세대들의 고생담은 유명하다. 특히 일본 가라테의 텃세가 심했다. “맞붙는 거죠. 격투를 벌이는 겁니다. 남미 사람들이 투우를 하잖아요. 칼로 소를 찌르고, 이를 보면서 환호하고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 아닙니까.”
아르헨티나 군정 시절. 태권도를 알리러 왔다니 “그렇다면 우리들 보는 앞에서 당신들끼리 붙어 봐” 하고 나왔다.물러설 수 없었다. 꼬리를 내리는 쪽이 지는 게임이었다.
“도복이 피바다가 됐죠. 그렇게 해서 인정을 받았어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간 사범들도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가라테의 벽은 그렇게 우리들 세대가 맨주먹으로 뚫은 겁니다.”
공명규(49) 씨가 자신의 손을 보여 주었다. 탱고 마에스트로의 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투박하고 거칠다. 상처투성이에 그나마 손가락 하나는 뒤로 휙 휘어져 나갔다. 수련생은 늘어났지만 공 씨 본인 말로 빛 좋은 개살구였다. 늘 살림이 쪼들렸다. 살인적인 인플레도 골칫거리. 한 달 치 수련비를 미리 받아 놔 봐야 자고 나면 50%씩 물가가 뛰었다.
공 씨는 ‘먹고 살기 위해’ 골프로 눈을 돌렸다. 아르헨티나에서 PGA 프로골퍼(동양인 최초였다)로 승승장구 하던 공 씨는 현재 탱고의 거장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탱고 홍보대사로도 위촉받았다.
탱고 얘기가 나오자 공 씨의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거침이 없고 격정적인 말의 폭포수가 쏟아졌다. “탱고의 원래 발음은 ‘땅고’죠. 아르헨티나에서 하지만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것이 아닙니다. 세계 이민자들이 만들어낸, 이민자들의 슬픔과 애환이 녹아 든 창작품이지요. 탱고를 출 때 반주를 하는 반도네온이란 악기만 해도 독일 겁니다. 독일 이민자가 들고 온 거죠.”
1997년 공 씨는 탱고 무용수들과 함께 고국을 찾았다. 아르헨티나에 태권도를 알렸듯, 조국에 탱고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스폰서 계약도 없이 김포공항에 내렸는데, 그만 IMF에 걸리고 말았다. 한국의 친지들조차 “공명규가 여자하고 춤이나 추고 다닌다”며 외면했다.
10년 만인 2007년. 공 씨는 ‘피버탱고’라는 이름으로 다시 내한했다. 이번엔 대성공이었다. 열정과 관능의 탱고에 한국의 관중들이 눈을 씻고 귀를 후볐다. 공 씨가 가방에서 누렇게 바랜 책자와 악보들을 꺼내더니 보물이라도 되는 냥 조심스럽게 내보였다. 100년이 넘은 것들이었다.
“이게 탱고입니다. 탱고는 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작품마다 다 가사가 있고, 악보가 있어요. 우리들은 춤을 추기 전에 이 가사를 다 외웁니다. 그리고 가사의 내용을 음악에 맞춰 몸으로 표현하는 거지요.”
공 씨가 보여 준 악보 중 하나는 저 유명한 ‘라 쿰파르시타’. 1915년경에 작곡된 것으로 탱고의 대명사격인 곡이다. 영화나 TV 프로그램에서 남자가 입에 장미를 물고 여자와 추는 장면을 많이들 보셨으리라.
탱고를 시연하는 공명규
“라 쿰파르시타가 ‘가장행렬’이란 뜻인데, 이게 장례 행렬이에요. 아주 엄숙하고 슬픈 곡이죠. 그런데 장미 한 송이 입에 물고 머리만 홱홱 흔들어대면 그만입니까? 장미는 뭐냐고요? 장례식 가면 관을 향해 조문객들이 장미를 던지잖아요. 지금 이 순간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고 탱고라고 여깁니다. 정형화 되어 가는 거예요. 다 가짜인데.”
탱고의 악보에는 가사가 적혀 있지 않다. 악보는 악보대로, 가사집은 가사집대로 존재한다. 안무도 정해진 것이 없다. 가사를 연구해 그 정서를 안무가가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놀라운 것은 탱고 스텝을 알면 세계 그 어떤 음악이라도 탱고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 씨는 “일단 한 번 보라”며 파트너의 손을 이끌고 스튜디오 한 가운데로 나갔다. 음악이 흐른다. 탱고곡이 아닌 귀에 익숙한 팝송이었다. 공 씨는 팝송에 맞춰 파트너 가르시아 사브리나를 리드하며 우아하게 탱고 스텝을 밟았다. 일년 신은 구두처럼 익숙하기만 하다. 미리 얘기해주지 않았더라면 오래 전부터 두 사람이 이 곡에 맞춰 연습해 온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공 씨가 이끄는 아르헨티나 탱고팀은 9월 2일부터 13일까지 서울 한전센터에서 ‘피버탱고2’란 타이틀로 공연을 한다. 이후 9월 25일부터 27일까지는 고양시 아람누리 아람극장으로 자리를 옮겨 공연한다.
“나이로 보나, 체력으로 보나 이번이 마지막일 겁니다. 탱고를 춘다는 것은 내게 있어 세상과의 격투입니다. 도복 대신 의상을 입고, 링이 아닌 무대에서 나는 싸웁니다. 그렇게 해서 탱고가 조국에 남을 수 있다면, 나의 오랜 싸움은 승리로 끝날 수 있을 겁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 |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화보]‘열정을 춤추는 남자’ 탱고 마에스트로 공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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