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 붕정만리, 장동건 → 천의무봉…한자성어로 본 스타들

  • 입력 2009년 5월 12일 02시 58분


■ 성균관대 한국한문학비평 수강생 참여

‘화이부동(和而不同).’

남과 사이좋게 지내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1월 교수신문이 180명의 교수에게 올해의 희망을 담은 한자성어를 골라 달라고 해서 선정한 것이다. 이 한 마디엔 한국사회의 고민과 희망이 함께 담겨 있다. 이처럼 적절한 한자성어는 수십 마디 말보다 훨씬 인상 깊은 메시지를 전한다.

그렇다면 방송 연예계를 주름잡는 TV 스타들을 한자성어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에게 의뢰해 이 학과 3, 4학년이 듣는 ‘한국한문학비평’ 수강생 20여 명에게 설문을 돌렸다. 대상은 강호동 김연아 비 소녀시대 유재석 장동건 F4(가나다 순) 등 7팀이다.

○ ‘개세지재’ 김연아와 ‘천의무봉’ 장동건, ‘요원지화’ 비

연예인은 아니지만 요즘 최고 화제 인물은 스포츠스타 김연아다. 그의 출연에 TV 프로그램이나 광고가 들썩거린다. 설문에서도 이 같은 인기는 여실히 드러났다.

김연아를 표현하는 말은 ‘세상을 덮을 만한 재주’라는 뜻의 ‘개세지재(蓋世之才)’를 포함해 탁월한 재능을 칭찬한 게 많았다. ‘붕정만리(鵬程萬里)’ ‘철중쟁쟁(鐵中錚錚)’도 마찬가지. ‘경국지색(傾國之色)’ ‘명모호치(明眸皓齒)’ 등 외모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뜻이 있으니 반드시 이룬다’는 ‘유지경성(有志竟成)’과 “부드러운 몸짓으로 냉정한 스포츠 세계를 평정했다”는 평을 붙인 ‘유능제강(柔能制剛)’도 있었다. 세계챔피언이 된 뒤 너무 ‘공사다망(公私多忙)’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배우 장동건은 외모에 대한 극찬이 돋보였다. ‘천의무봉(天衣無縫)’ ‘인중지룡(人中之龍)’ 등 흠잡을 데 없다는 평이다. ‘우성인자(優性因子)’ ‘돌연변이(突然變異)’도 나왔으나, 너무 ‘두문불출(杜門不出·집에만 있고 바깥출입을 아니 함)’해 아쉽다는 평도 있었다.

가수 비는 의견이 엇갈렸다. 해외에서도 대형스타로 발돋움한 그의 기세를 ‘요원지화(燎原之火)’ ‘교룡운우(蛟龍雲雨·용이 구름을 얻다)’ ‘군자불기(君子不器)’ 등으로 호평하는 반면, 최근 미국 콘서트 취소와 관련해 거액의 배상 소송을 당한 탓인지 ‘호사다마(好事多魔·좋은 일이 많으면 탈도 난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며 걱정하는 이도 많았다.

○ ‘마부작침’ 유재석 VS ‘가돈맹어호’ 강호동

방송 MC인 개그맨 강호동과 유재석에 대해서도 다양한 한자성어가 나왔다. ‘우공이산(愚公移山)’ ‘노마십가(駑馬十駕·둔한 말도 열흘 동안 수레를 끈다)’ 등 성실함을 칭찬했다. 유재석은 특히 ‘마부작침(磨斧作針)’ ‘대기만성(大器晩成)’ 등 무명에서 정상에 오른 노력을 높이 샀다. ‘우유부단(優柔不斷)’ ‘경거망동(輕擧妄動·경솔하여 생각 없이 행동하다)’이라는 말도 일부 있었으나, 슬기롭고 예의바른 모습을 나타낸 ‘명철보신(明哲保身·이치에 밝아 적절하게 자신을 보전한다)’ ‘겸양지덕(謙讓之德)’ 등이 훨씬 많았다.

강호동은 강력한 리더십이나 남자다운 이미지에 대한 성어가 많았다. ‘가정맹어호(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에서 힌트를 얻은 ‘가돈맹어호(苛豚猛於虎)’가 최고의 한자성어. ‘파죽지세(破竹之勢)’ ‘일기당천(一騎當千)’ 등도 나왔다. ‘천하장사(天下壯士)’처럼 평범한 말도 나왔다.

○ ‘금상첨화’ F4 & ‘다다익선’ 소녀시대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남녀 단체를 꼽는다면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네 남자 F4와 노래 ‘지’로 상반기 가요계를 평정한 그룹 소녀시대가 아닐까. 이들의 평가는 성별에 따라 서로 달랐다. 이들에 대해 이성들의 평가는 ‘다다익선(多多益善)’ ‘금상첨화(錦上添花)’ ‘종합선물(綜合膳物)’ 등 함께 모여 있어 더 좋다는 반응이었다. ‘부부의 정’을 뜻하는 ‘금슬상화(琴瑟相和)’를 맺고 싶단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동성들의 평가는 ‘인해전술(人海戰術)’ ‘야단법석(野壇法席)’ 등으로 인색했다. 소녀시대를 두고 ‘얼굴을 예쁘게 꾸며 남성에게 음탕한 마음을 품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 ‘야용지회(冶容之誨)’란 말도 나왔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방송가 화제-현안들은…

장자연 사태: 격화소양(隔靴搔양)-신 신고 발바닥 긁기

통속극 범람: 거세개탁(擧世皆濁)-온 세상이 다 혼탁하다

닮은꼴 프로: 천편일률(千篇一律)-여러 시문의 격조가 비슷해 특성이 없음

“고 장자연 사태를 보면 격화소양(隔靴搔양·신 신고 발바닥 긁기)이 떠오른다.”

TV스타 이미지를 표현하듯 방송가 화제나 현안들에 대해 떠오르는 한자성어를 정리했다. 해결될 기미가 없는 장자연 사태에 대해선 우울한 한자성어가 많았다.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으니 속 시원하지 않다는 말이다. ‘오리무중(五里霧中)’ ‘지지부진(遲遲不進)’하며, ‘가담항설(街談巷說·길거리 뜬소문)’이 넘친다는 의견도 나왔다. 사건을 맡은 수사기관의 능력을 ‘검려지기(黔驢之技·보잘것없는 기량)’라 부른 이도 있었다.

비현실적인 통속극이 많은 TV 드라마에 대해서도 냉정한 지적이 이어졌다. “온 세상이 다 혼탁하다”는 ‘거세개탁(擧世皆濁)’을 비롯해 ‘백귀야행(百鬼夜行·온갖 잡귀가 밤에 나다닌다)’ ‘중구난방(衆口難防)’ 등이 눈에 띄었다. 드라마 내용이 엇비슷해 ‘대동소이(大同小異)’라고 대답한 이들도 있었다.

최근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넘치는 예능 프로그램도 닮은 포맷이 반복돼 ‘천편일률(千篇一律)’을 지적한 이들이 많았다. ‘리얼’을 표방했지만 짜인 대본이 있음이 알려진 탓인지 ‘교언영색(巧言令色·교묘한 말과 알랑거리는 얼굴)’과 ‘가기이방(可欺以方·그럴듯한 말로 남을 속이다)’도 등장했다. TV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모두 시청률에 얽매여 ‘와각지쟁(蝸角之爭·참으로 보잘것없는 싸움)’을 벌인다는 평가도 있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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