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의 광채 ‘황홀’ 로맨스의 깊이 ‘소홀’

  • 입력 2009년 2월 3일 02시 58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브래드 피트의 스트립 댄스.

12일 개봉하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2세 이상 관람가)는 여성 관객에게 흐뭇한 시각적 쾌감을 안겨주는 영화다. 주인공 벤자민(브래드 피트)이 탄탄한 나신을 드러내는 베드신은 단 한 번뿐. 하지만 여성 관객들은 두 볼을 붉히며 한숨을 내쉰다.

벤자민은 인생을 거꾸로 살아낸 기이한 남자다. 80세 노인처럼 낡은 골격과 근육을 갖고 태어난 그는 해가 갈수록 점점 젊어지더니 갓난아기가 돼 생을 마감한다.

나이 들수록 어려지는 주인공을 연기한 피트는 한 꺼풀 한 꺼풀 옷이 아닌 나이를 벗는다. 쭈글쭈글한 노인 분장을 덜어나가다가 40대 중반의 맨얼굴을 드러내더니, 시침 뚝 떼고 15년 전 ‘가을의 전설’ 때의 광채를 재현한다. 보송보송한 솜털이 느껴질 정도로 희멀끔해진 벤자민에게 연인 데이지(케이트 블란쳇)가 황홀한 듯 던지는 대사는 뭇 여성 관객의 심정을 대변한다.

“맙소사, 네 모습을 봐…. 완벽해.”

하지만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피트의 외모만큼 완벽하게 다듬어진 이야기를 만들지는 못했다. 두 사람의 세 번째 공동작업. 살인마에게 아내의 목을 잘리고(‘세븐’), 피범벅이 된 얼굴로 쓰러졌던(‘파이트 클럽’) 전작과 달리 조각처럼 살살 다뤄지는 피트는 2시간 46분의 시간 속에 지루한 모습으로 갇혀버렸다.

원작은 ‘위대한 개츠비’의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2년 발표한 소설. 인간의 기억, 관계맺음,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는 원작과 달리 영화는 로맨스에 집중한다. 하지만 두 남녀의 사랑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드문드문 끼어드는 감상적 대사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삶은 무수히 많은 상호작용의 연속이다. 누구도 통제 못하는….”

“인생의 종착역은 똑같아. 어떤 길로 가는지가 다를 뿐이지.”

자연스레 늙어가는 데이지와 자연을 거스르며 젊어지는 벤자민. 그들이 빛나는 행복을 나누는 교차점은 찰나처럼 짧다. 영화는 함께 늙어가는 객석의 연인들이 누리는 최고의 시간 역시 그들과 다름없이 짧음을 보여준다. 그 애틋한 메시지는 벤자민의 목소리가 딸을 향한 아빠의 것으로 방향을 틀면서 흐릿해진다.

“세상에 너무 늦거나 이른 건 없다. 넌 뭐든지 될 수 있어…. 꿈을 이루는 데 시간제한은 없단다.”

판타지 버전의 ‘포레스트 검프’ 같은 마무리. 인생을 거꾸로 살아낸 기이한 아빠치고는 끝맺음의 조언이 익숙하고 평범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