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조광수]비주류로 행복하게 사는 법

  • 입력 2007년 11월 1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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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부터 ‘비주류’였다. 선생님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연말 학예회 때 같은 반 친구들과 연극을 만들었고 자율학습 시간에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수박을 몇 통씩 사다가 깨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기에 바빴다. 공부 열심히 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주류에 들 수 있었지만 난 누가 시키는 대로 따르기보다 남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일을 벌이는 게 좋았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문제아는 아니었지만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 아이가 되기도 어려웠다.

그렇지만 행복했다. 어른들은 나를 걱정했지만 친구들은 좋아했다. 친구들과 만든 연극을 즐기면서 잊지 못할 우정을 쌓았다. 자율학습 시간에 돌렸던 수박은 입시 지옥의 청량제가 됐다. 행복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여전히 비주류다. 대중문화의 중심에 있는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가 됐지만 난 여전히 삐딱하다. 수십억, 수백억 원짜리 영화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1억 원짜리 독립영화를 만드는 게 내 일이다.

이런 나를 보면서 영화투자사 관계자나 동료 제작자들은 걱정스럽다는 듯 충고한다. “돈 안 되는 독립영화 자꾸 만들어서 무슨 소용이 있나. 제발 정신 차려라. 그럴 시간이 있으면 돈 될 만한 영화에 에너지를 집중해라.” 과연 그럴까. 남들이 말하는 돈 될 만한 큰 영화를 꼭 만들어야 하는 걸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주류 영화제작자로서 나는 잘 해 나가고 있고, 그래서 행복하다. 어린 시절 어른들은 나를 걱정했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행복을 찾았다. 돈 안 되는 영화를 만든다고 걱정들을 하지만 그건 한국 영화시장의 현실을 잘 모르는 소리다.

청년필름이 제작한 첫 번째 독립영화 ‘후회하지 않아’는 지난해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고 투자금의 90%에 이르는 순수익을 거뒀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06년 한국 영화의 투자 대비 수익률은 ―20%로 총투자손실이 1000억 원에 육박했다. ‘돈 될 것 같은’ 영화들이 시쳇말로 ‘죽 쑤고’ 있을 때 돈 안 될 것 같은 영화로 90%의 수익률을 올렸다. 나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가는 중이고 그 길은 성공 가능성이 꽤 높은 길이다.

내가 보기에 독립영화는 돈 안 되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산업의 블루오션이다. 올해는 한국의 ‘우리 학교’, 아일랜드 영화 ‘원스’가 흥행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두 작은 영화의 투자 대비 수익률은 무려 500%를 넘겼다. 이쯤 되면 대박 상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전국의 10곳 남짓한 스크린에서 시작한 소박한 영화들이 스크린 500곳 이상을 점유하며 대대적으로 개봉한 영화들을 수익성 면에서 멀찌감치 따돌린 것이다. 비주류의 승리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비주류에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입증됐다.

제작자의 시각에서 판단하는 시장성 외에도 작은 영화의 매력은 크다. 독립영화는 큰돈을 들인 대작 영화보다 작은 이야기를 다뤄 관객에게 작품 선택의 폭을 넓혀 준다. 사회적 소수자, 조선 국적의 재일동포, 거리의 악사 등이 주인공이 된다. 독립영화는 그들의 소소한 삶에 밀착한 이야기에 진심을 담아 관객에게 전한다. 작은 영화들이 최근 거둔 작지 않은 성공은 관객과 진심을 소통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큰 영화 만드는 주류에 편입해 안정성도 추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난 그럴 마음이 없다. 비주류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새롭고 재미난 길들이 보인다. 그 길을 행복하게 가고 있다. 부러울 게 없다.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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