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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3월 1일 0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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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1904~1944년)의 시 ‘청포도’의 느낌은 따듯하고 정겹다.
그래서 이 시는 본의 아니게 이육사란 인물의 진면목을 들여다보는데 방해가 된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시인 이육사는 ‘윤동주와 함께 일제 암흑기의 2대 민족 시인이자 저항 시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육사’ 하면 떠오르는 그의 대표작 ‘청포도’의 포근함에 젖어 제멋대로 그를 ‘낭만적인 시인’ 으로 여긴다.
그러나 육사는 일제의 요시찰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는 그를 두려워했다. 도대체 그의 정체가 무엇이었기에 일제는 '시인'이었던 그를 두려워했을까.
올해는 이육사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 그의 참 모습을 조명할 수 있는 TV프로그램이 제작됐다.
KBS 1TV는 1일 오후 7시30분 ‘민족시인’ 이육사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초인이여 광야를 노래하라'를 방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중국 현지 취재 등을 통해 이육사는 ‘시인’이 라기보다는 ‘무장독립운동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립운동을 하다 열 여섯 차례나 감옥에 갇혀야 했던 육사에게 있어 시는 마음과 같이 더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에게 가하는 채찍이자, 못다 한 일들에 대한 눈물이었고 그에게 허용된 최후의 저항이었을 뿐이라는 것.
1943년 겨울 육사는 친구 신석초 시인을 찾아가 베이징행을 알린다. 한참 정세가 험난한 판국에 베이징에 간다는 것은 무언가 중대한 일이 있다는 것. 그해 봄 아픈몸을 이끌고 육사가 베이징을 향해 길을 떠나는 것으로 프로그램은 시작된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 등으로 두 차례 옥고를 겪은 육사는 본격적인 항일투쟁에 나서기 위해 의열단이 만든 조선혁명군사 정치간부학교 제1기생으로 입교한다. 조선의 절대 독립을 목표로 한 이 학교에서 육사는 군사 훈련은 물론 암살, 폭탄테러, 폭탄 제조, 철도 폭파 등 특수공작까지 배운다.
제작진은 작년 12월부터 중국 베이징·난징·상하이·광저우 등을 돌며 육사의 흔적과 조우했다.
연출자 이건협PD는 “취재를 통해 파악한 ‘이육사’는 조국사랑에 있어 누구보다 철저했던 사람으로, 결과에 상관없이 항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육사는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던졌다. 그런데 현재를 사는 사회 지도층이란 사람들은 조국을 위해 무엇을 바칠 것인지 묻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박해식 동아닷컴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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