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명예 퇴진한 그레그 다이크 英BBC 前사장

  • 입력 2004년 1월 30일 18시 08분


코멘트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둘러싼 영국 정부와 BBC방송의 대립으로 결국 ‘방송의 달인’ 그레그 다이크 BBC 사장(56·사진)이 중도 사임했다.

그는 민영방송으로 방송계에 입문해 세계 최고의 공영방송이라는 BBC의 사령탑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이번 일로 BBC를 81년 역사상 최대 위기에 빠지게 했다는 오명을 쓰게 됐다.

중산층 가정 출신에 평범한 공립학교를 나온 다이크가 1977년 런던의 민영방송 LWT에 입사했을 때 그의 성공을 점치는 사람은 없었다. 영국 방송계는 전통적으로 명문가 출신에 명문 사립학교를 나온 인물들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다이크는 시청률에 따라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냉혹한 민영방송사에서 시청자가 원하는 것을 족집게처럼 짚어내는 뛰어난 감각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83년 ‘TV-am’방송의 제작국장 시절, 아침뉴스 시청률이 저조하자 중량급 뉴스앵커를 해고하고 손으로 조작되는 쥐 모양의 인형을 앵커로 올렸다. 방송계에서 조롱이 쏟아졌지만 시청률은 6배로 뛰어올랐다. 적자 누적으로 망해가던 ‘TV-am’은 이를 발판으로 기사회생했다.

99년 저조한 시청률로 고심하던 BBC방송에 부사장으로 영입됐을 때는 “민영방송 출신이 영국의 자존심 BBC를 바보상자로 전락시킬 것”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듬해 사장에 오른 그는 공영성과 대중성을 절묘하게 결합한 프로그램 제작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려 “역시 다이크”라는 찬사를 받았다. 사장 취임 후 사사건건 정부를 트집 잡는 등 비판 수위도 높였다.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관련 BBC 보도는 오보’라는 이번 허튼 보고서에 대해 정부의 ‘언론탄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파이낸셜 타임스는 29일 사설에서 “노동당의 열렬한 지지자인 그가 BBC 사장 취임 후 ‘블레어 총리의 지지자’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블레어 정부를 무리하게 몰아세운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